
애나 캐번 지음, 박소현 옮김 l 민음사 l 1만8000원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최진영이 근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작가정신)에 남긴 후기는 이성애적 사랑의 성립 자체가 불가해지는, 말하자면 ‘에로스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게 한다. 책은 1930년대 진취적 여성 작가 백신애의 세대를 뛰어넘은 남녀간 사랑 이야기(‘아름다운 노을’)에 화답하는 현대 로맨스를 써야겠다는 의도에서 비롯하는데 최진영이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이랬다. “…자, 이제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남성의 로맨스를 써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무 그림도 떠오르지 않았다. (중략) 정규를 남자로 설정한다면, 지금 나의 상태로 쓸 수 있는 장르는 범죄나 스릴러뿐이다. 하지만 나는 로맨스를 쓰고 싶었다. 사랑이란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결국 최진영은 40대와 20대 여성의 사랑, 우정을 형상화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일찌감치 극대화한 작품의 하나로, 이제 국내에서도 누군가는 애나 캐번의 <아이스>를 꼽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그리 알려진 바 없으나 1901년 프랑스 칸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로 불행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소설을 썼으며, 꿈과 환각, 약물중독, 소외·불안을 시현하는 ‘야행성 언어’의 창시자로 간주된다는 애나 캐번은 서구문학계에서 디스토피아 소설의 한 정점을 찍은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 배경에 1967년의 유작 <아이스>가 있다.

프랑스 출생 영국 작가 애나 캐번(1901~1968).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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