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소리 역시 뇌 속에서 변형된다

등록 2023-02-24 05:00수정 2023-02-24 09:22

음악심리학자의 ‘착청’ 연구
옥타브·음계·유령어 등 다양한 착청

소리를 식별하고 그룹화하는 뇌
감각이 판단보다 우위에 서는 경험
무언가를 볼 때 일어나는 ‘착시’처럼 인간의 뇌는 음악과 언어를 들을 때 ‘착청’ 현상을 일으킨다. 게티이미지뱅크
무언가를 볼 때 일어나는 ‘착시’처럼 인간의 뇌는 음악과 언어를 들을 때 ‘착청’ 현상을 일으킨다. 게티이미지뱅크

왜곡하는 뇌
음악과 언어가 밝히는 뇌의 비밀
다이애나 도이치 지음, 박정미·박종화 옮김 l 에이도스 l 2만2000원

<왜곡하는 뇌>는 듣는 책이다. 음악을 듣는 책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책이다.

저자 다이애나 도이치는 음악심리학을 연구해온 학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의 심리학 교수로 근무중인 그는, 이 책에서 착청(錯聽)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소개한다. 음악과 언어의 청각적 착각 현상을 뜻하는 착청은 옥타브 착청, 음계 착청, 반옥타브 역설, 유령어 착청, 말이 노래로 변하는 착청 등으로 나뉜다. 아마 이렇게 나열해도 무엇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왜곡하는 뇌>에는 여러 개의 큐알(QR)코드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해당하는 착청 현상을 들어볼 수 있다. 착청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여러 패턴의 소리들을 듣게 되는데, 양쪽에서 같은 소리가 나오는데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쪽에서 고음이, 왼쪽에서는 저음이 나오는 듯 듣게 되는 ‘옥타브 착청’이라거나(왼손잡이는 편향이 없다고 한다), 컴퓨터가 울퉁불퉁하고 이상한 음의 연속을 들려주는데도 뇌는 음악적 의미를 갖도록 음을 재구성하는 ‘음계 착청’을 비롯한 다양한 착청 현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뇌과학과 관련한 연구의 역사와 과학지식을 설명적으로 나열하는 부분과 신기한 소리 체험 코너가 반복되어 오간다.

착청 현상으로 인한 흥미로운 사건들도 많았다. 1893년 여름,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슈는 차이콥스키 6번 교향곡 <비창>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작곡가를 만났고, 이후 그 곡을 지휘했다. 교향곡 마지막 악장은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파트끼리 주제선율과 반주선을 서로 주고받으며 시작하는데, 지휘자는 차이콥스키의 악보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원작자는 거부했고, 지휘자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여 악보를 수정해버렸으며, 이 수정된 악보는 <비창>의 대안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들이 착청 현상으로 인한 문제였음을 인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음계 착청 현상의 예에 들어맞는다.

더불어, 우리의 청각 메커니즘은 끊임없이 소리를 식별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그룹화한다. 그래서 여러 소리 중 하나에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다른 소리들은 배경으로 밀어낼 수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 전경에 있던 소리를 배경으로 밀어내고, 배경에 있던 소리를 전경으로 인지하기 역시 가능하다. 작곡가들은 이러한 효과를 의식적으로 이용한다. 성악곡에서 성악 파트는 명확하게 전경으로, 반주는 배경으로 의도된다. 바흐의 ‘인벤션’이나 ‘푸가’처럼 대위법적 성격이 짙은 음악에서는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멜로디 라인이 병렬로 연주되고, 감상자는 이 라인들을 오가며 음악을 감상하게 된다. 그 효과는? 시각으로 따지면 ‘모호한 그림’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듣는 사람이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가 지각된다는 의미에서.

말이 음악으로 들리는 착청 현상을 설명하는 영상의 일부. 유튜브 갈무리
말이 음악으로 들리는 착청 현상을 설명하는 영상의 일부. 유튜브 갈무리

착청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장르는 또 있다. 전자댄스음악(EDM)에서는 연속성 착청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 “가끔 킥 드럼의 비트는 함께 녹음된 다른 트랙 사운드의 진폭을 미묘하게 감소시킨다. 연속성의 복원 결과로, 킥이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동안 다른 소리들도 여전히 연속되는 것으로 들린다.”

절대음감과 말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절대음감을 습득할 확률은 어린 나이에 음악 교육을 시작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게 다는 아니다. 중국어나 베트남어와 같은 성조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조와 함께 어휘를 습득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음에 대한 절대음감’을 발달시킨다.

지식, 신념, 예측이 만들어내는 ‘유령어 착청’도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온 킹>의 주제곡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하면서 제목을 몰라 노래 가사를 “아~ 그랬냐~ 발발이 치와와~”로 듣는 것도 이러한 유령어의 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잘 들리지 않는 도청된 소리로부터 메시지를 유추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도청된 소리의 해석에는 듣는 이의 지식과 예상이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 역시 유령어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다. 영화의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사운드트랙을 따로 제작하고 녹화된 영상과 싱크를 맞추는 방식으로 무의식적 추론 효과를 영화적 기법으로 활용한다. 셀러리 줄기를 비틀고 부러뜨리는 소리를 녹음해 뼈를 부러뜨리는 장면에 쓰는 식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런 현상을 시각에 국한해서 <회화론>에 쓰기도 했다. “마치 큰 종소리를 들을 때 당신이 상상 가능한 모든 단어들을 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벽 안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착청’ 현상을 연구해온 음악심리학자 다이애나 도이치. 누리집 갈무리
‘착청’ 현상을 연구해온 음악심리학자 다이애나 도이치. 누리집 갈무리

한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재생하면(‘백마스킹’이라고 부른다)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는 도시괴담이 한국에서 돌았는데, 이와 유사한 괴담이 비틀스의 곡 ‘아임 소 타이어드(I’m So Tired)’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청각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 상호 연결구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청각 경로 각 단계를 거치는 소리 신호는 특정 방식(강화되거나 약화되는 방식)으로 조정되며, 이러한 조정은 청자의 경험, 기대, 정서 상태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의식으로부터 지각된 최종 형태를 표상하는 신경신호는 말 그대로 ‘뇌 속에서’ 변형된 것이지만 청자는 그 변형된 형태가 ‘외부 세계’로부터 도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하루종일 머릿속에 들러붙어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귀벌레’라고 부른다)을 비롯한 중독성 있는 음악의 원리는 각종 시그널 음악, 대중음악의 후크 등과 연결해 생각해서 읽게 된다.

<왜곡하는 뇌>는 여러 면에서 인간 뇌의 신비를 경험하게 한다. 글로 읽을 땐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소리로 들으면 개운하게 이해하게 된다. 감각이 지적 판단보다 우위에 서는 상황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셈이다. 백문이 불여일청이다.

이다혜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