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어린이책’ 2호 내달 출간
자기긍정·다양성·공존 가치 세운
2021~22년 신간 중 92권 엄선
“성주체성·안전 책 여전히 부족”
자기긍정·다양성·공존 가치 세운
2021~22년 신간 중 92권 엄선
“성주체성·안전 책 여전히 부족”
자기 긍정, 다양성, 공존의 가치를 품은 어린이책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성평등 도서 목록을 모아 추천하는 <오늘의 어린이책 2>가 다음달 8일 출간된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평론가, 작가, 교수, 편집자, 교사 등으로 구성된 ‘다움북클럽’이 직접 읽고 엄선한 어린이‧청소년 도서 목록을 실은 책이다.
<오늘의 어린이책>은 2018년에 여성가족부와 한 대기업, 어린이재단이 공동주관한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이 시초다. 어린이에게 성평등 지향 서적을 읽히는 것을 기조로 삼았다. 2019년에 이어 2020년 두 번째 ‘나다움 어린이책’ 목록을 발표하고 도서를 보급하며 영향력이 퍼져나가려는 와중에, 특정 세력에 의해 ‘동성애와 조기 성애화를 조장한다’는 왜곡된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중단됐다.
하지만 당시 관여한 민간전문가들 누구도 이대로 프로젝트를 끝낼 수는 없었다. ‘다움북클럽’이라는 새 이름을 짓고 한국여성재단 지원으로 2021년 <오늘의 어린이책 1>을 출간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때 정부가 삭제한 책도 새로 포함했다.
<오늘의 어린이책>의 목적은 자기 긍정, 다양성, 공존의 가치를 담은 책을 어린이‧청소년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오늘의 어린이책 2>를 완성해야 할 이유, 완성할 수 있던 동력이다. 추천 도서 중 일부를 소개한다.
나와 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기 긍정’을 담은 도서는 다음과 같다. <나는 보라>(김유진 지음, 안경미 그림, 창비)는 자신의 색으로 씩씩하게 살아가겠다는 어린이의 독립 선언을 담은 시집이다. 크기와 피부색, 주름이나 흉터 유무에 따라 위계를 따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몸몸몸: 나의 몸 너의 몸 다른 몸>(서맨사 커시오 지음, 김보람 옮김, 불의여우), 여성이 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 중 ‘수학자’에 관심을 일으키는 <나는 수학자가 될 거야>(시니 소마라 지음, 나자 사렐 그림, 박정화 옮김, 바나나북) 등이 어린이·청소년들 스스로 자신의 주체성을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다양성’을 다룬 책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우리에게 펭귄이란>(류재향 지음, 김성라 그림, 위즈덤하우스), <오늘의 햇살>(윤슬 지음, 국지승 그림, 문학과지성사)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 주고 어린이를 위로하며 성장을 격려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각자의 입장과 내면을 그린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할 수가 없어>(유아사 쇼타 지음, 이시이 기요타카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나 장애 여성이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당당히 권리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롤 모델을 그려낸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김지우 지음, 휴머니스트)처럼 사회적 약자에 관한 편견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평등하게 연대하고 배려하며 함께 어울려 사는 ‘공존’에서는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용기 있게 증언과 활동을 이어온 한국과 세계의 인권‧평화 운동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담은 <할머니, 우리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한성원 지음, 소동), 성폭력 피해자가 사랑과 우정의 연대 고리를 통해 생존자로 일어나는 <너를 위한 증언>(김중미 지음, 낮은산)처럼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이야기들을 선정했다. 부동산 문제, 디지털 성폭력,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동화집 <감추고 싶은 폴더>(황지영 지음, 도아마 그림, 노란상상)의 어린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나는, 비둘기>(고정순 지음, 만만한책방)는 도시 비둘기를 포함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지키기 위해 존중과 연대의 의지를 다지게 만든다.
<오늘의 어린이책 2>를 준비하며 특별히 치열하게 토론했던 분야가 있다. 바로 ‘안전’과 ‘환경’이다. 예기치 않은 각종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안전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했고, 기후변화로부터의 재난은 한 해가 다르게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화한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여자아이가 축구를 하는 이야기’ 정도면 추천 도서가 됐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단순히 성별 고정관념을 깨는 데 그치지 않고, 입체적 인물과 서사와 표현에 설득력이 있어야만 <오늘의 어린이책 2> 목록에 실렸다.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질 수 있었던 건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출판계 전반에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어린이책>도 이 현상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오늘의 어린이책 2>에는 여성이 꿈꿀 수 있는 다양한 직업—건축가, 수학자, 탐험가, 과학자, 환경운동가—을 탐구할 수 있는 ‘일의 세계’와 장애나 성적 지향성으로 세상에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사회적 인정’,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 과거보다 더 넉넉히 도서를 채울 수 있었던 점이 주목할 만했다.
추천 도서가 50권 정도로 채워지리란 초반의 예상을 뛰어넘고 <오늘의 어린이책 2>에 실린 책은 92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좋은 어린이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증거겠으나, ‘성’과 관련된 ‘몸의 이해(성교육)’, ‘안전(성폭력)’ 관련 도서가 다양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더불어 홍보가 부족해 주목받지 못하는 소규모 출판사와 신인 작가의 도서를 발굴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일체 외부 지원 없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오늘의 어린이책 1>의 독자들은 오랜 시간 다움북클럽을 응원하고 지속성을 요구해 왔지만 반대편에서는 성평등 운동을 ‘젠더 갈등’이라 일컫고, 현실과 요원한 성교육이 일어나고 있다. 다움북클럽은 이런 상황일수록 어린이‧청소년에게 건강한 책을 건네야 한다는 의지로 다시 힘을 모았다. 얼마 전 마무리한 알라딘 북펀드에서 목표 금액의 200%를 상회하는 성과를 내며 우리와 한마음인 이들의 존재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어린이책 1>은 ‘금서’를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태어났다. <오늘의 어린이책 2>는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꿈꾸며 노란 옷을 입고 독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린이와 가까운 책장에 <오늘의 어린이책>이 무지개 빛깔로 물들길 바란다. 사실 다움북클럽이 진정 바라는 것은 더는 <오늘의 어린이책>이 필요 없어지는 사회다. 언젠가 이루어질 그날을 위해 다움북클럽은 의미 있는 발걸음을 이어나갈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책 1>, 2021년 9월 출간

이 글은 서현주 전 초등교사(성교육 활동가), 유지현 책방사춘기 대표, 김다노 동화작가(왼쪽부터)가 공동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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