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
엄지짱꽁냥소 지음 l 달그림(2020)
독서교실에는 사전과 지도, 온갖 실용서가 있다. 나는 어린이가 무엇을 물어봐도 가르쳐줄 수 있다. 들꽃의 이름, 밤하늘의 별자리, 심지어 자동차의 구조에 대해도 설명할 수 있다. 실물이든 그림이든 손가락으로 짚을 수 있으면 된다. 어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할 때다. ‘환희’ ‘음색’ ‘벅차다’ ‘운명’ 같은 말은 사전의 뜻풀이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어린이들은 주로 그런 것을 물어본다.
‘마음’은 그림책의 단골 주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자기 것인데도 잘 모를 때가 많다. 표현하지 않으면 남이 알기 어렵지만, 나도 모르게 드러나기도 한다. 관계가 구간 구간 단절된 오늘날,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어린이를 성장시키고 타인과 연결하는 큰 힘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어른들도 잘 안다. 심리학의 발전과 유행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는’ 그림책에 담다 보니, 어떤 그림책에서는 주제가 연기처럼 흩어져버린다. 마음의 다채로움을 표현하는 색채와 형태가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어린이의 자기 긍정을 격려하기 위해 마치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무책임하게 그려진 그림책들을 볼 때면 누구를 위한 그림책인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마음먹기>의 표지를 보자마자 그동안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의아해졌다. ‘마음’에 ‘먹다’라는 동사를 붙이는 걸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올리지는 못했다. 달걀이라고 명시하지 않았어도 이 노란색 하트가 달걀노른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노란색은 틀림없이 ‘달걀노른자의 노란색’이다. 이렇게 직관적인 그림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마음먹기>에서 ‘나’는 마음이고, 마음은 달걀이다. 마음이 드디어 제 모습을 찾은 것만 같다.
이 그림책은 알 듯 말 듯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친근함’이라는 튼튼한 줄기를 잡았다. 친근함은 그림책이 갖추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친한 척을 하면서 가르치려 들거나 낮은 자세로 어린이의 비위를 맞추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음찜-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마음쌈-마음을 모으고 싶을 때” 같은 다정한 유머가 친근하다. 마음이, 즉 달걀이 프라이팬 위에서 뒤집히고 다른 재료와 마구 뒤섞이고 꼬였다 풀리는 그림은 이해하기 쉬워서 친근하다. 사람들은 나(마음)를 때로 새카맣게 태우기도 하는데 그럴 땐 미련 없이 버리고 새 달걀을 깨라는 조언이 소박하고 진솔해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나’ 대신 어린이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다. 어린이를 들들 볶는 것, 어린이를 데우거나 식히는 것, 어린이를 녹여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새봄에 마음을 크게 먹는 어린이도, 마음을 졸이는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달걀, 아니 마음으로 어떤 요리를 하고 싶은지 들어주면 좋겠다. 그 멋진 요리를 친구와 나누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