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첫 소설집 <펭귄뉴스>
김중혁(35)씨의 첫 소설집 <펭귄뉴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중편 분량의 표제작과 단편 일곱 편이 실렸다. 김중혁씨는 2000년 <문학과 사회>에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인 <펭귄뉴스>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책 앞날개의 작가 소개에는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penguinnews.net)가 적혀 있다. 들어가 봤더니, 장난이 아니다. 만화에서부터 에세이와 낙서, 서평과 영화평, 음악과 전시에 관한 글, 인터뷰에다 전자제품 등에 관한 품평까지, 한마디로 빵빵하다. ‘소설은 언제 쓰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잡식성’과 ‘주의산만’이야말로 소설집 <펭귄뉴스>를 구성하는 핵심인 것도 같다.
소설집 맨 앞에 수록된 작품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무용지물 박물관.’ 소설의 화자 ‘나’는 ‘레스몰’(less + small)이라는 이름의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인물. “세상에는 정말 쓸모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가능한 한 압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 라디오 디자인을 의뢰하면서 알게 된 인터넷라디오 방송국 피디 ‘메이비’는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터넷라디오의 디제이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 바로 ‘메이비의 무용지물 박물관’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메이비가 하는 일은 눈이 보이지 않는 청취자들에게 어떤 사물을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가령 잠수함: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는 고층 빌딩, 캠코더, 만화책, 야구, 크리스마스 트리, 도서관, 공항 같은 사물들을 ‘무용지물 박물관’의 소장품 목록에 올려 왔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시야가 굉장히 좁지만 눈을 감으면 공간은 끝없이 넓어진다”고, 소설 말미에서 화자가 쓸 때, 그는 메이비의 박물관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어지는 작품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의 이눅씨 역시 메이비와 비슷한 부류의 인물이다. 실제 사물이 아닌 ‘개념’을 발명한다는 그가 자신이 발명가임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는 설계도뿐이다. 천재인지 사기꾼인지 반신반의하던 화자 ‘나’는 이눅씨의 집이 바로 그가 설계도로 그린 ‘방주’였음을 알게 된다. 그 집은 성경 속 노아의 방주였으며, 에스키모들이 백인들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떠다니는 섬’이기도 했던 것.
에스키모 얘기가 또 한 편 있다.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는 에스키모들의 나무 조각 지도를 소재로 삼는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도 전문가. 기존 지도의 오류를 적발해서 바로잡는 일을 하는 그가 어느 순간 인생이라는 지도 위에서 길을 잃는다. 오래도록 병수발을 해 온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목적의식을 잃어버린 그에게 캐나다에 사는 인류학자 삼촌이 보내 온 선물이 바로 에스키모의 나무 조각 지도였다. ‘세상의 끝’이라는 뜻을 지닌 곳 툴레에서 연구하고 있는 삼촌은 말한다: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
<바나나 주식회사>라는 기묘한 제목의 작품 역시 지도를 중요한 모티브로 삼는다. 여기서 말하는 바나나는 ‘어디에도, 아무것도 짓지 말라’는 구호의 영어 두문자다. 자전거를 좋아하던 친구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수수께끼 같은 지도를 근거로 ‘바나나 주식회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지도를 다룬 두 작품에서 주인공은 나란히 길을 잃는 경험을 한다. 두 경우 모두 주인공은 지도에 의지해 나아가다가 길을 잃으며 그럼에도 결국 지도 덕분에 다시 제 길을 찾아 간다. 그렇다면 소설집 <펭귄뉴스>의 세계를 이렇게 요약해 보면 어떨까. 박물관 속에서 지도 그리기라고.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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