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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바다가 삼킨 삶의 풍경, 야상곡처럼…

등록 2006-03-16 22:05수정 2006-03-17 16:40

세실 바즈브로 소설집 <녹턴>
세실 바즈브로 소설집 <녹턴>
프랑스 여성 작가 세실 바즈브로(52)의 소설집 <녹턴>(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얇은 책이다. 네 편 모두 바다에서의 조난사고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녹턴’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따로 없다. 죽음과 삶, 떠난 자와 남은 자, 고통과 위안 같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을 ‘야상곡’이라는 음악용어로써 표현한 것이리라. 시적 여운이 남는 스토리, 성긴 듯 촘촘한 문장들은 아닌 게 아니라 존 필드의 녹턴을 떠오르게도 한다.

<페리의 밤>은 난파된 페리호에서 동료 연주자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주인공 삼는다. 그의 심리 상태는 규정하기가 힘들다. 딱히 죄책감도 아니고 두려움도 아닌, 무중력 상태 같은 모호함과 무기력증이 사고 후의 그를 사로잡는다. 사고는 그의 삶에 일종의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삶에는 후편이 없었다.” 먼저 죽은 드럼 주자의 아내는 모종의 상흔을 안고 드럼 주자와 결혼한 이였다. 오랜 망설임 끝에 통화가 이루어지고, 여자는 말한다: “살아남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난 오래 전부터 습관이 됐어요.” 살아남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여자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등댓불>의 주인공은 암초에 부딪친 요트가 가라앉는 사고를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등대지기다. 그는 분명 요트 위에서 “공포에 질린 한 사내의 창백한 얼굴을” 확인했는데, 현장에 출동한 구조 보트의 대원들은 요트에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나만이 어떤 사라짐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사실이 그의 죄의식과 고독을 극대화한다.

한편, <혼자라면>의 남자는 동생과 함께 요트를 타고 나갔다가 혼자서만 돌아온 뒤 경찰의 끈질긴 심문을 받는다. 그의 공식적인 답변은 어디까지나 사고였다는 것이지만, 소설은 그가 동생을 바다에 밀어 떨어뜨렸을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바다로 보낸 병>은 아들을 삼킨 바다에 편지를 담은 병을 띄워 보내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결말이 인상적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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