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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늙마 작가’와 죽은 이들의 대화

등록 2006-03-23 22:33수정 2006-03-24 14:32

존 버거 소설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소설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영국의 원로 작가 존 버거(80)가 지난해 펴낸 신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 번역돼 나왔다. 강수정 옮김, 열화당 펴냄.

<여기…>는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집이다. 여덟 편 가운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편이 특정 지명을 제목으로 삼고 있으며, 주인공 ‘존’이 여러 정황상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작품들 사이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들 속에서 존이 만나는 이들이 한결같이 죽은 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첫 편인 <리스본>에서는 15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크라쿠프>의 노비 광장에서는 어린 시절 그의 스승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켄 아저씨’를 만나며, 미술학교 동창생을 찾아간 런던 교외 아일링턴에서는 학교 시절 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미묘한 사이로 지냈던 여자 동창을 떠올린다(<아일링턴>).

작가는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죽은 이들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주인공 존은 죽은 이들과 수시로 만나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망자들은 안개 속에서 형체가 드러나듯 문득 나타났다가는 마찬가지로 슬며시 자취를 감추고는 한다. 존이, 대화 상대자가 망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은 예컨대 수가 보이는 체스 게임에 훈수를 두라는 제안에 대해 ‘죽은 사람은 체스의 말을 움직이지 못해!’(103쪽)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 정도이다. 존이 망자들과 나누는 대화가 따옴표 표시 없이, 지문과 구별되지 않게 제시되는 것은 그 대화의 물리적 기반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형식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같다.

죽은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에는 물론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아마도 그 자신 죽음을 앞두게 된 늙마의 존=작가에게 죽음과 죽은 이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관심은 죽음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부여로 나아가는데, ‘모든 건 죽음으로부터 시작됐어’(58쪽)라는 어머니의 말, 그리고 ‘우리는, 내가 노인이 되고 그는 죽으리라는 걸 내다봤고, 이것이 우리를 동등하게 만들었다’(93쪽)라는 존 자신의 설명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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