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르타의 태양
로랑 고데 지음. 김민정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9400원
로랑 고데 지음. 김민정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9400원
잠깐독서
프랑스의 젊은 작가 로랑 고데(34)의 2004년 공쿠르상 수상작 <스코르타의 태양>은 이채롭게도 이탈리아 남부를 무대로 그곳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뙤약볕에 땅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때는 오후 두시, 땅은 화형에 처해지고 있었다”는 문단으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그 땡볕을 뚫고 한 사내가 마을로 들어온다. 15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복수’를 위해 돌아온 루치아노 마스칼조네. 소설은 그가 ‘스코르타’ 일가의 씨를 뿌린 187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의 5대에 걸친 스코르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숨가쁘게 뒤쫓는다. 소설의 핵심은 루치아노의 손녀인 카르멜라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스코르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연대기적 서술과, 죽음을 앞둔 카르멜라가 마을 신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을의 악당이었던 할아버지와 그보다 더 끔찍한 악당이었던 아버지. 스코르타 일가는 희대의 악당들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운명의 저주를 딛고 마을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위한 일상의 고투를 펼친다. 5대에 걸친 수십 명 스코르타들의 생애가 한결같이 평탄하고 순조로울 리는 없는 법. 그럼에도 소설의 결말은 지극히 낙관적이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 인간도 올리브처럼 영원하리라. 몬테푸치오의 태양 아래서는.” 카르멜라의 오빠인 도메니코는 “우리는 태양의 자식들이야. 그 열기를 한가득 품고 있지”라고 말한다. 그런 열정은 땀 흘려 일하는 순간에 지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로 나타나는데, 그와 함께 스코르타 일가를 지탱하는 힘이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다. 역시 도메니코가 조카 엘리아에게 하는 말이다: “넌 아무것도 아니란다, 엘리아. 나도 마찬가지고. 중요한 건 가족이야.” 길고 복잡한 인간사를 요령있게 틀어쥐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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