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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 극우-극좌 ‘적과의 토론’

등록 2006-03-30 19:02수정 2006-03-31 16:41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2000<br>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br>
김항 옮김. 새물결 펴냄. 1만9500원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새물결 펴냄. 1만9500원
할복자살한 극우파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미·일 제국주의 타도’ 주장한 전공투
1969년 5월 도쿄대 고실서 놀라운 만남
‘기성세대 염증’ 공통분모 안고 나눈 열정적 토론
바라는 새 질서 달라 각자의 길로
미시마 유키오와 전공투가 공개 석상에서 토론을 벌인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69년 5월 13일 오후 일본 도쿄대학 교양학부 900번 교실이 그 무대였다.

미시마 유키오(1925~1970)는 누구인가. <금각사> <풍요의 바다> 등의 작품을 쓴 일본 전후문학의 스타이자, 자위대 본부를 점거하고서 일본의 재무장을 촉구하면서 할복 자살한 극우파 지식인이다. 그렇다면 전공투는? 전공투란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의 줄임말로, 1960년대 말 일본의 자민당뿐만 아니라 공산당까지도 기득권 세력으로 비판하면서 ‘미·일 제국주의 타도’와 ‘제국대학 도쿄대 해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투쟁한 극좌파 학생운동조직이다. 이 둘이 만났다면 어떤 토론이 이루어졌을까? 양쪽 사이에 접점이 있을 수 있었을까?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은 이 놀라운 만남이 낳은 책이다. 도쿄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항씨가 번역한 책은 두 권의 원저를 합친 것이다. 1969년 5월 13일에 있었던 미시마와 전공투 사이의 토론을 녹취하고 그에 대한 양쪽의 후기를 덧붙여 그 해에 나온 책, 그리고 토론 30주년을 맞아 전공투 토론자 등이 참여해 1999년 여름에 행해진 토론 등을 담은 2000년도의 단행본.

“이렇게 나를 단상에 세우는 것이 반동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구요? 뭐 반동이 반동적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에 여기 섰습니다.”(웃음)

시종일관 유쾌하고 우호적 분위기


1000명이 넘는 젊은 ‘적’들 앞에 선 미시마 유키오의 제일성은 뜻밖에도 여유있고, 그런 미시마를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 역시 ‘우호적’이다. 놀랍게도(!) 이런 분위기는 두 시간 반 남짓한 토론 내내 지속되었다. 심지어는 “저 근처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동경대 교수들보다는 미시마 씨가 선생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느니, “천황을 천황이라고 제군들이 한마디만 해주면 나는 기꺼이 제군들과 손을 잡겠”다느니 하며 서로에 대한 존경과 공감을 표하기까지 한다. 미시마의 토론 후기 역시 “나의 전공투 방문은 대체로 유쾌한 경험이었다”로 시작된다.

양쪽의 접촉이 이처럼 뜻밖의 광경을 연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미시마와 전공투는 당시 일본의 기성체제에 대한 염증과 분노라는 출발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 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폭력의 불가피성이라는 점에서도 통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1969년 5월 13일 오후 도쿄대 교양학부 900번 교실의 단상에 선 미시마 유키오. 2층까지 가득 채운 1000여 명의 극좌파 전공투 학생들 앞에 선 이 극우파 작가의 강렬한 눈빛에서는 도전의식과 유희충동이 아울러 느껴진다. 새물결 제공
1969년 5월 13일 오후 도쿄대 교양학부 900번 교실의 단상에 선 미시마 유키오. 2층까지 가득 채운 1000여 명의 극좌파 전공투 학생들 앞에 선 이 극우파 작가의 강렬한 눈빛에서는 도전의식과 유희충동이 아울러 느껴진다. 새물결 제공
물론 그들이 폭력을 사용하면서까지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세우려는 새로운 질서의 이름은 서로 크게 달랐다. 그것을 한마디로 하자면, 각각 ‘해방구’와 ‘천황’이 아니었을까. 전공투는 자신들이 점거한 학교 강당으로 상징되는 충만한 시·공간의 체험을 유토피아의 상으로 삼았다. 반면 미시마에게 천황은 모든 것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양쪽은 토론 내내 서로의 가치를 역설하고 상대의 그것을 깎아내리는 데에 주력한다. 토론 말미에서 양쪽은 “당신들 속에 있는 절대적인 것에 천황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잖아?”(미시마)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리케이드 속으로 들어오면 됐잖아?”(전공투)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전공투의 한 학생이 미시마에게 정식으로 공동투쟁을 제안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미시마는 “나는 제군들의 열정을 믿습니다”라는 덕담(?)을 건네면서도 결국 “지금 제안은 아주 묘한 꼬드김이라 아주 유혹적이지만, 나는 공투(=공동투쟁)를 거부합니다”라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한다. 이어지는 학생들의 웃음과 박수.

양쪽의 토론은 폭력과 윤리, 육체와 정신, 자아와 타자, 자연 대 인간, 시간의 지속성(크로노스)과 순간성(카이로스), 천황의 신격과 인격, 말과 사물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상당히 깊이 있게 전개되었다. 물론 자유 토론이었던 만큼 한계가 없지 않았다. 미시마와 전공투 학생 세 사람이 쓴 토론 후기는 토론의 논점과 그에 대한 쌍방의 평가를 담고 있어 토론과 보완해서 읽을 만하다. 미시마가 보기에 전공투는 “모든 과거를, 역사를, 전통을, 연속성을 부정하고 기억마저도 부정했다.” 반대로 전공투가 보기에 미시마는 “과거에 대한 사모” “절대적 개념인 천황과 자기의 동일화”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미시마와 전공투는 현재의 의미를 강조하는 데에서는 일치했지만, 한쪽이 과거로 거슬러오르는 반면 다른 한쪽은 미래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양쪽의 행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근대의 극복이라는 목표에서는 통했지만 그 방법론에서 갈라졌달까.

미시마의 자결 예견되기도

이 역사적인 토론이 있은 지 1년 반 뒤인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는 자위대 본부 점거 농성에 이은 전통 무사 식 할복자살로 충격을 준다. 전공투와의 토론 당시 그가 1년 반 뒤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결국 점거와 할복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를 확인하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내가 행동을 벌일 때는 결국 제군과 똑같이 비합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합법적으로, 결투의 사상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니까, 포돌이들한테 잡혀가기 전에 자결이든 뭐든지 해서 죽어버릴 겁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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