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고종석(47)씨가 50권의 시집에 대한 애정 어린 품평을 담아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을 펴냈다. ‘시인공화국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지은이가 ‘산책’이라 표현한 시집 개관은 “한국 현대시문학의 수원지”인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에서부터 1970년대산 시인인 강정(35)씨의 <처형극장>(1996)까지, 또는 2000년대에 나온 오규원(65)씨의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까지 한국 현대시사의 거의 전 시기를 포괄한다. 시기적으로만이 아니라 시적 경향의 측면에서도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김지하(65)씨의 <오적>과 같은 참여적?현실지향적 시집들이 한쪽에 있는가 하면 박상순씨의 와 성미정씨의 <대머리와의 사랑>처럼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반사실주의적인 시집들이 다른 한쪽에서 균형을 잡아 준다.
아닌 게 아니라 ‘균형감각’이야말로 고종석씨의 시집 개관을 특징짓는 성질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한국 현대시사의 대표적 시집들이 망라되어 있는 한편, 그야말로 고종석 개인의 체험과 애정의 소산이라고밖에 보기 어려운 시집 몇 권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그런 균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
균형감각은 한 시인이나 시집을 평가하는 데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가령 그는 <화사집>을 다루는 글에서 “스물여섯 살 난 청년이 낸 이 얇은 시집은 한국어가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의 가장 아스라한 경지에 우뚝 서 있다”는 찬사와 나란히 “미당의 삶은, 적어도 그의 공적 자아의 행적은, 시시한 것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는 혹평을 제출한다.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에 대해서는 그의 서툰 한국어와 감상주의를 호되게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그 세대의 정직한 초상이자 한계였음을 너그럽게 인정한다. 김남주의 투쟁시를 접하며 순간적으로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다가는 이내 그런 자신을 다잡고 다시금 ‘안전거리’ 밖으로 물러나는 모습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물론 균형감각만으로 좋은 글이 성립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와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그것을 실어 나르는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이야말로 이 책의 장처라 해야 옳다. 가령 이성복씨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대한 논의를 보자. 지은이는 이 시집이 내뿜은 낯섦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기존 시인들과의 비교 검토라는 방법론을 택한다. 그 결과 황동규·정현종·오규원씨에 비해서는 한결 과격하고, 김수영에 비해서는 사회역사적 지평이 희박하며, 또래인 황지우와는 달리 ‘통속’에 대한 열망이 보이지 않고, 대구·경북 시단의 유사초현실주의와는 달리 산문적 단정함에 얽매여 있음을 들춰 낸다. 이런 비교 검토를 거친 이성복 시집에 대한 총괄: “이미지들은 자주 단절돼 있지만, 그 단절된 이미지들을 나르는 문장은 산문에 버금가게 규율적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그 문장들의 새뜻한 수사가 산드러진 속도감에 얹혀 있다는 것, 그것이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새로움이었다.”
마지막으로 <진달래꽃>에서 시작해 ‘윤극영의 노래들’로 끝나는 꼭지의 배치를 주목할 만하다. <진달래꽃>의 시인을 두고 지은이는 이렇게 쓴다: “소월은 시를 쓰지 않고 시를 노래했다. 그는 시인의 원형으로서 가인(歌人)이었다.” 동요 <반달> <설날> 등의 작곡자이자 작사자인 윤극영은 문학인이라기보다는 음악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들을 그에게 할애한 것은 시의 운문성을 새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서정시의 산문적 해리(解離)는 문학의 전반적 위기 맨 앞자리에 시를 밀어 앉히는 결과를 낳았다”고 그는 본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시는 운문성을 회복함으로써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노래는 시의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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