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생활사 3-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역사비평사. 1만7000원
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역사비평사. 1만7000원
잠깐독서
18세기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평양감사향연도>의 ‘월야선유도’. 평양감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대동강 뱃놀이가 한창이다. 1.9m의 화폭에는 구경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빼곡하다. 강변에 그려놓은 사람만 224명. 1번부터 224번까지 일련번호를 붙여 머리, 겉옷의 종류 등을 뜯어보니 각양각색이다. 댕기머리 총각, 갓 쓴 사람, 맨상투머리…. 맨상투머리는 영락없이 천한 신분인데, 누가 양반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갓이 양반의 전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복에서 반-상의 차이는 없었을까? 도포 위에 검은 술이 달린 띠를 두른 13명, 이들이 확실한 양반이다. 술띠는 ‘반’을 상징했다.
한국고문서학회와 역사비평사가 기획한 ‘조선시대 생활사’의 3번째 책은 이처럼 의식주를 통해 조선시대의 삶을 복원해낸다. 한끼의 식사와 한벌의 옷에 신분이 드러나고, 시대상이 나타난다. 이를 고스란히 복원하기 위해 박지원의 <양반전>이나 <춘향전>의 묘사를 가져다쓰고, 양반들의 일기나 호적 등 고문서를 들춰보기도 한다. 72년간의 생활사를 기록한 어느 양반의 일기는 당시 주거생활과 가족 수, 집의 크기를 짐작케하는 ‘단서’가 된다. 고문서 외에 김홍도나 김득신 등의 풍속화도 좋은 매개체가 되어준다.
소소한 일상에 주목하는 만큼, 재밌는 이야깃거리도 많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이야기 한토막. 열 세살된 며느리가 얹은머리를 하고 앉아 있다가, 시아버지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려다 목이 부러져 죽었다. 얹은머리가 크면 클수록 아름답다고 여겨지던 때라 목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국가가 흰색의 사용을 금지했지만 색깔 염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탓에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이 됐다거나, 요즘 성인남자의 3배를 먹던 대식습관 때문에 조선인들이 외국에 ‘대식가’로 알려졌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