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거듭되는 죽음…범인은 정글 자본주의

등록 2006-04-13 22:04수정 2006-04-14 14:14

김윤영 소설집 <타잔>
김윤영 소설집 <타잔>
2002년에 낸 첫 소설집 <루이뷔똥>으로 좋은 평을 얻었던 김윤영(35)씨가 두 번째 소설집 <타잔>(실천문학사)을 펴냈다. 표제작을 비롯해 여덟 개의 단편이 묶였다.

표제작을 비롯한 상당수의 작품에서 남자들은 사라지거나 죽어 없어진다. 그들은 아내에 의해 독살되거나(<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 실직한 뒤 문득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거나(<얼굴 없는 사나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정글 속으로 사라져 버리거나(<타잔>), 이웃집 남자에게 살해당하거나(<산책하는 남자>) 한다. 사라지는 것이 남자들만은 아니어서, <세라>의 여주인공은 해일에 휩쓸려 간 다른 여자의 신분증을 주워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그런데 이들의 실종 혹은 죽음은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많은 경우에 이들은 실제로 사라지거나 죽기 전에 ‘상징적인 죽음’의 과정을 거친다.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에서 ‘나’는 “내가 전에 알던 정의롭고 이성적이고 눈에서 광채가 나고 호리호리하던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깨달은 뒤 남편을 죽일 결심을 한다. <집 없는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수지의 “남편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전형적인 변호사의 모습”으로 변했으며 “15년 전의 히피 청년은 이미 이곳에 없”는 것으로 말해진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거듭’ 죽는가. 이들을 죽이고 또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산책하는 남자>의 실직자에 따르면 ‘정글 자본주의’가 그 범인이다. 같은 말을, <얼굴 없는 사나이>의 주인공은 할리우드 영화에 비유해 이렇게 표현한다: “불쌍한 거지, 나쁜 놈들, 꼭 주인공 하나만 살려놓고 나머진 꼭 엠하게 죽여요.”

정글 자본주의 혹은 무한경쟁 시스템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글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목격된 <타잔>의 주인공은 “어떤 다른 세상을 향해 짓는 미소”를 피워 올리며, <세라>의 주인공은 “다른 세상을 직접 고를 수만 있다면…” 하는 소망을 품는다. 그 소망이 작가 자신의 것임은 물론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