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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의 주체는 배달원·구두닦이였다”

등록 2006-04-14 18:03수정 2006-04-14 20:08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에 조종을 울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하층도시민이 주도한 이 사건은 독재체제와 대중이 평화롭게 공존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겨레> 자료사진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에 조종을 울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하층도시민이 주도한 이 사건은 독재체제와 대중이 평화롭게 공존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겨레> 자료사진
“학생·지식인은 촉매…하층민의 도시봉기
대중과 독재 평화롭게 공존하지 않았다”
김원 교수 ‘임지현 사단의 대중독재론’ 비판

올해도 ‘대중독재론’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003년 10월 한양대 인문학 연구소 주최로 국제 학술대회가 열린 뒤, 벌써 4년째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이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동안 대중독재 담론의 산실로 자리잡은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올해 행사를 주최했다. 14일 한양대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대중독재론은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독재체제를 떠받드는 중요한 기반이었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4년여 동안 임 교수를 중심으로 관련 저서가 꾸준히 나왔고, 학술대회도 자주 마련됐다. 대중독재론이 ‘박정희 신화’를 강화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비롯해 관련 논쟁도 많이 진행됐다. 나올 이야기는 거의 다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대중독재론’ 박정희 신화 강화

그럼에도 ‘장기지속’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대중독재 담론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이론과 실증을 모두 포괄하려는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그동안 대중독재론을 비판한 학자들은 “박정희 시기에 대한 구체적 연구·분석 없이 서구 이론 틀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번 토론회에선 이 대목을 적극 수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1979년 부마항쟁과 70년대 현대조선소 노동자들의 실상에 접근한 두 소장학자의 논문이 토론회의 백미를 이뤘다. 모두 대중독재론에 대해 비판적 거리두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김원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부마 항쟁을 “도시 하층민 중심으로 전개된 ‘도시봉기’”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이는 지식인과 재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의 관점에서 부마항쟁을 다뤘던 기왕의 시각과 구분된다. 부마항쟁의 실제 주체는 “중국집 배달원, 술집 종업원, 노동자, 구두닦이, 깡패”들이었다. 학생과 지식인은 항쟁 초기의 촉매 역할에 머물렀다. 이 실증분석이 뜻하는 바는 명료하다. 부마항쟁은 “경제위기, 양극화, 사회적·문화적 박탈감 등으로 인해 도시하층민이 체제로부터 이반”된 결과라는 것이다. 독재와 대중은 결코 평화롭게 공존하지 않았다.

원래 김 교수는 ‘민주화 담론’이 가진 폐쇄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논문에서도 “민주화운동론이 특정한 목적을 지닌 허구적 구성물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는 대중독재론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능동적 지배의 주체’로서 대중을 상정하는 대중독재론은 대중과 체제 간에 발생한 간극의 ‘한 부분’만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동의·합의가 고정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끊임없는 긴장·갈등 관계를 내장하거나 곧잘 폭발적 형태로 드러났다는 점은 김준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논문에서도 지적됐다. 김 교수는 1970년대 현대조선 노동자의 사례를 연구했다. 이들은 신분상승과 빈곤탈출 등에 대한 욕구를 통해 분명 독재체제 내부로 ‘몰입’했지만, 동시에 일탈과 저항의 공간에 뛰어들기도 했다. 1974년 울산 현대조선에서 일어난 70년대 최대 규모의 노동자 ‘폭동’이 대표적이다. 불과 한나절 동안 공장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일상 속에서 거대한 저항의 에너지가 응축됐고, 이것이 일순간에 섬광처럼 방전”됐다.


김준 교수도 ‘노동자 폭동’서 저항 실증

대중독재론은 민주/반민주, 인권탄압/경제성장의 이분법 구도 뒤에 숨겨진 박정희 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촉매’ 역할을 했다. 다만 학계를 벗어나자마자 그 담론이 박정희 체제 긍정이라는 ‘상품가치’를 발휘했다는 사실도 눈감을 수는 없다. 이제 관건은 이 담론이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임지현 사단’이 박정희 시대에 대한 실증분석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그런 점에서는 희망적이다. 그들은 여전히 가장 정력적인 연구집단 가운데 하나다. 동의와 저항이 복잡하게 엉켜있던 시대에 대해 대중독재론이 한발 더 나아간 설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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