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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식에도 뿌리가 있구나

등록 2006-04-20 18:40수정 2006-04-21 14:09

지식: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br>
피터 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br>
현실문화연구 펴냄. 1만5000원
지식: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
피터 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
현실문화연구 펴냄. 1만5000원
1450년 인쇄술 발명에서 1751년 백과사전 출간까지
지식 사회학과 지식인은 어떻게 탄생했나
지리 정치 경제 문헌 철학 두루 섭렵해 조각맞추기
망원경의 지적 재산권·미적분법의 표절 논란도
정보통신기술로 맞은 ‘제2의 지식폭발’에 시사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문화사 교수인 피터 버크(69)가 쓴 <지식: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은 원제 그대로 ‘지식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Knowledge)에 해당한다. 지은이가 근대 초 유럽을 전공한 역사가인 만큼, 원저의 부제에 밝혀져 있는 대로, 구텐베르크에서 디드로까지, 그러니까 1450년 독일의 활판인쇄술 발명에서부터 1751년 <백과전서>의 출판까지를 대상으로 삼는다.

‘지식의 사회사’란 지식사회학의 하위 범주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지식사회학의 출현과 확산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책을 시작한다. 일종의 뿌리 찾기 또는 위상 정립인 셈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사회학은 20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에밀 뒤르켕과 그의 제자들, 특히 마르셀 모스가, 미국에서는 <유한계급론>의 지은이로 잘 알려진 소스타인 베블런이 이 학문의 탄생을 이끌었다. 지은이는 막스 베버와 카를 만하임이 주도한 독일쪽의 움직임에 더 큰 비중을 할애하는데, ‘지식의 사회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출현한 것이 독일인 탓도 있다. 만하임은 지식인을 일러 “상대적으로 계급에서 자유로운 집단”이자 “자유롭게 떠다니는 인텔리겐치아”로 정의했다.

구텐베르크에서 디드로까지

지식사회학은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20세기 중후반에 ‘부활’한다. 그런데 사회학이 아닌 다른 분야 학자들의 자극에 힘입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인류학), 토마스 쿤(과학사), 미셸 푸코(철학) 등이 지식사회학의 부활에 기여한 이들이다. 좀 더 최근으로 오자면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위르겐 하버마스, 피에르 부르디외 등이 지식사회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지은이가 보기에 부활한 지식사회학은 △지식의 획득과 전달에서 구축, 생산, 제조로 강조점 이동 △전보다 크고 다양한 집단이 지식 보유자로 강조됨 △미시사회학에 대한 관심 커짐 △사회계급보다는 성차(性差)와 지리에 더 주목함 등의 특징을 지닌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의 지은이인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식의 지리학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한다.

“거대한 주제들을 짧게짧게 검토하는 것을 좋아”하며 “조그만 조각들을 맞추어 큰 그림을 완성시키는 방식이 좋다”는 고백대로 지은이는 다양한 출처와 형식의 자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지은이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비록 근대 초기 유럽이라는 시·공간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중심으로 한 지식의 지리학·인류학·정치학·경제학·문헌학·철학 등을 두루 섭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 지식은 흔히 정보와 혼동되기도 한다. 지은이는 ‘날것’이며 특수하고 실용적인 것을 가리키는 ‘정보’와, ‘익힌 것’이며 사고과정을 거쳐 분석 또는 체계화된 것으로서의 ‘지식’을 구분한다. 그러나 근대 초기에는 주술이나 마법, 천사나 악마 같은 것들에 대한 앎 역시 지식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은이의 논의에 포함된다. 또 요리, 천 짜기, 사냥, 경작, 산파술까지도 지식의 경계 안에 자리한다. 지식의 현장들로 수도원, 대학, 도서관, 서점, 연구실, 실험실만이 아니라 병원, 여인숙, 이발소, 화랑, 커피하우스까지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도서관의 모습을 그린 1610년작 그림. 당시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높여 토론을 하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현실문화연구 제공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도서관의 모습을 그린 1610년작 그림. 당시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높여 토론을 하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현실문화연구 제공
지식은 익힌 것·정보는 날 것

‘지식’ 하면 곧장 ‘지식인’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다면 지식인은 언제 탄생한 것일까. “학식을 쌓았으면서도 관료제도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던 ‘인텔리겐치아’라는 러시아어가 등장한 19세기 중반 설이 유력하다. 드레퓌스 대위를 옹호하는 ‘지식인 선언’이 등장한 19세기 후반 설까지 포함해 지식인=급진적 인텔리겐치아의 후예들이라는 ‘정설’의 근거를 이룬다. 그러나 프랑스의 아날학파 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 같은 이는 최소한 대학 안에는 중세 때 이미 지식인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쇄술의 발달은 지식과 지식인들의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편 16~18세기에는 여성 지식인이 없었을 것이라는 짐작과는 달리 이 무렵에도 소수의 여성들은 책을 쓰고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여자가 대학에서 공부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으며, 남성들이 지배하는 ‘학식의 공화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남성의 학식 공화국’은 금녀지대

대신 남성 지식인들끼리의 교류와 협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법 활발했다. 지은이는 1654년 네덜란드 라이덴에서 이탈리아인 가톨릭교도 중국학 학자와 네덜란드 개신교도 아랍학 학자가 만나 서로의 공통 언어인 라틴어를 통해 지식을 나누고 비교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오늘날 정숙의 대명사로 통하는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며 토론을 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도서관을 비롯해 지식인들 사이의 다양한 형태의 사교는 지식의 확산과 생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른 형태의 ‘만남’도 있었다. 네덜란드의 한 렌즈 연마공과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나폴리의 자연철학자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가 ‘지적 재산권’을 놓고 다투었던 망원경,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서로의 작업에 대해 모르는 가운데 따로 연구함으로써 표절 논란을 낳았던 미적분법의 사례 등은 지식 역시 엄연한 ‘재산’으로 취급되게 되는 사회 변화를 보여준다. 또 적은 수의 책을 꼼꼼히 정독했던 16세기 사람 몽테뉴, 그리고 많은 수의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찾아 읽었던 18세기 사람 몽테스키외 사이의 독법의 차이는 지식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방식의 변모를 일러준다.

인쇄술의 발명과 과학혁명,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지식의 폭발’을 경험했던 무렵을 대상으로 한 이 책 <지식>은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또 다른 ‘지식 폭발’을 목격하고 있는 오늘의 실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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