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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버지’ 향한 애증 그리고 화해

등록 2006-04-20 19:23수정 2006-04-21 14:09

김이정 첫 단편집 <도둑게>
김이정 첫 단편집 <도둑게>
1994년 <문화일보>를 통해 등단한 김이정(46)씨가 첫 단편집 <도둑게>(문이당)를 묶어 냈다. 앞서 김씨는 두 편의 장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와 <물 속의 사막>을 낸 바 있다.

표제작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아버지’의 의미를 따져 묻는 것은 이 소설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등단작인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와 또 다른 작품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이념을 좇아 월북했다가 되내려온 아버지를 향한 자식의 애증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낮게 엎드려>에서 전쟁통에 단신 월북했던 아버지는 남은 가족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다시 내려오지만, 그 사이 가족들은 가장을 찾아 북으로 올라갔고 아버지 자신은 체포된다. ‘나’의 어머니와는 8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와서 재혼한 것. <…이름으로>에서는 젊어서 진보계 활동을 했던 아버지가 나중에 터진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월북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아버지가 식량을 찾아 중국 국경을 넘었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휴전선 남쪽으로 오게 된 것. <…낮게 엎드려>의 딸과 <…이름으로>의 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경계하지만 소설이 끝날 즈음에는 힘들지만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표제작 <도둑게>와 <개미의 집>에서 ‘아버지’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적 면모를 드러낸다. <개미의 집>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의 성장기에 갑자기 세상을 뜨고 ‘억척 어멈’으로 변신한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도둑게>에서는 처음부터 아예 아버지가 부재한다. 주인공이 미혼모의 딸인 까닭이다. <개미의 집>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초래한 위기는 “개미 떼들이 이 집의 모든 틈을 파고들어 치명적인 균열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형상화한다. <도둑게>의 주인공은 “절대로 금 밖으로 나가는 짓은 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어기고 유부남을 사랑하게 된다. 아버지의 눈빛을 닮은 그의 아이를 가졌지만 그는 떠나가고 만다. 낙태를 결심하고 들른 병원 수술대에서 마지막 순간에 뛰쳐나오는 결말은 되풀이되는 운명의 수긍이자 ‘아버지’에 대한 화해의 몸짓으로 볼 수 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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