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흐느낌
신기섭 지음. 문학동네 펴냄. 7000원
신기섭 지음. 문학동네 펴냄. 7000원
지난 연말 교통사고로 숨진 젊은 시인 신기섭(1979~2005)의 유고시집 <분홍색 흐느낌>이 나왔다. 지난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무도마>를 비롯해 생전에 발표한 20여 편과 미발표 및 습작품을 포함해 모두 53편이 묶였다.
“오래 자다 일어난 것 같은데 어둡다 문득 잠결에 친구의 전화를 받은 기억, 그러나 그 친구 이미 오래 전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은 기억, 죽어놓고도 생전처럼 또 묻던 그 말: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지?)”(<봄눈> 부분)
“늙게 살면 빨리 죽는 거야/희망을 말하면 빨리 죽는 거야”(<문학소년> 부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른 죽음을 맞은 시인의 시들에서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죽음에 관한 숱한 언급을 만나는 것은 전율스럽다. 그는 심지어 “나는 내 입으로 곡을 하며 길을 떠난다”(<꽃상여>)라는 구절도 남겨 놓고 있는데, 말이 죽음을 부른 것인지, 시인에게 남다른 예지력이 있었던 것인지, 남은 자들은 알 길이 없다.
죽음 시편들 이상으로 시집을 지배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에 관한 기억이다. 시인은 미리 써 둔 시집 머리말에서 “이 시집을 언제나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 바친다”고 밝혔다. 왜 할머니인가.
“추억이란 이런 것./내 몸속을 떠도는 향기, 피가 돌고/뼈와 살이 붙는 향기, 할머니의 몸이/내 몸속에서 천천히 숨쉰다.”(<추억> 부분)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할머니가 된다. 품에 안겨 젖 빨아먹고 싶던 생의 모든 아름다움, 따뜻함, 예쁨, 그러나 할머니가 된 것들이여.”(<할아버지가 그린 벽화 속의 풍경들> 부분)
어머니로 대표되는 모든 긍정적인 가치의 이름이 시인의 경우에는 할머니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서울예대 문창과 스승인 김혜순 시인은 시집 뒤에 붙인 표사에서 “기스바! 네 할머니 톤으로 너 불러보자.(…)네 시와 삶 속에 가득 들어찼던 죽음 버리고, 네가 그리 시 속에서 찾아 헤맸던 죽음 속에 깃든 삶의 나라로 날아가버렸구나”라며 어린 제자의 성급한 죽음을 애도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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