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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늑대’와 ‘망태할아버지’가 버티는 세상

등록 2006-05-25 21:58수정 2006-05-26 17:23

틈새<br>
이혜경 지음. 창비 펴냄. 9500원
틈새
이혜경 지음. 창비 펴냄. 9500원
아이들을 두려움으로 묶어두는 ‘늑대의 금기’
금을 넘어 길 떠난 아이가 만난건 무섭지 않은 늑대
금기와 편견 벗어나는 작가의 성장 드라마
그렇지만 마음 속 ‘망태할아버지’ 정체모를 불안으로
이혜경(46)씨의 세 번째 소설집 <틈새>가 창비에서 나왔다.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장편 <길 위의 집>을 포함하면, 1982년 등단 이후 네 번째 책이 된다.

<틈새>에 실린 아홉 개의 단편 중 가장 짧은 분량인 <늑대가 나타났다>는 아이의 성장 또는 작가의 탄생에 관한 ‘신화’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그 시절, 내가 살던 마을 근처엔 늑대들이 득시글거렸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늑대’는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금기의 다른 이름이다. 어른들은 마을 주변의 일정한 둘레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 놓고는 그 너머는 늑대의 땅으로 규정해서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공포와 위협이 수반된 늑대의 금기는 과연 아이들의 행동 반경을 ‘안전한’ 금 안에 묶어 놓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늑대의 금기가, 두려움과 체념을 뚫고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까지를 막지는 못한다: “얘야, 마을 바깥엔 널 기다리는 것들이 많단다. 넌 대체 언제쯤 떠날 거냐?”

아이는 결국 금을 넘어 길을 떠난다. ‘늑대에게 발목 하나를 내주고라도 단념할 수 없는 세상’이 금 바깥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아이가 만난 것은 무엇이었던가. 늑대?

그 사람을 늑대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어스름녘,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마을 안에서 늑대 취급을 받던 그뿐이었다.” ‘그’란 ‘처제하고 사는 이’로도 불리는 마을의 외톨이. 아내가 병으로 죽자 아이들의 처참한 몰골을 보다 못한 아이들 이모가 그의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돌보다가는 그예 아이들 아버지인 그까지 돌보게 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뜻밖의 만남에서 아이는 ‘늑대’가 전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음은 물론, “내가 나 아닌 아기늑대인 것 같”다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른다. 늑대의 탄생, 그러니까 작가의 탄생 이야기다.

<늑대가 나타났다>의 이야기를 인식과 성장의 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지와 편견의 너울을 벗고 깨달으면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길 위의 집’ 떠올리게 한 ‘피아간’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어른이 된 작가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늑대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금기와 편견이 얼마든지 버티고 있다.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의 ‘망태할아버지’는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와 거의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혼자 생각한다: “나이가 든 뒤에도, 망태할아버지는 마음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모습만 달리했을 뿐.”

늑대의 금기를 벗어났음은 물론 스스로가 늑대가 된 것 같다고 느끼기까지 한 어른들의 세계에 또 다른 늑대(또는 망태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른이 되는 것이 일회적 사건 또는 행사로 완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그 아름다운 풍경 뒤편, 안락한 내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바퀴벌레”를 상상하며 ‘망태할아버지’ 노래를 웅얼거린다. 이러할 때 숨어 있는 바퀴벌레란 평온해 보이는 일상 뒤의 균열과 불안, 공포를 상징하는 것일 테다. 소설집 속에서 정체 모를 불안과 공포에 대한 언급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견고해 보이던 것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섬>)

“한순간 눈에 띈 포스터 한 장이 한 사람의 회로를 교란시키고 마침내 수리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틈새>)

“그러나 과연 그 믿음만큼 안전할까.”(<크레바스>)

참신하면서 효과적 비유 도드라져

‘정체 모를’이라고는 했지만 그 실체와 원인을 적시하지 못할 노릇은 아니다. <물 한 모금>의 주인공인 이주노동자 아밀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니다. 동료 노동자 샤프가 당국에 붙잡혀 추방당할 처지에 놓여 있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낯선 땅에서 먹을것을 훔치다가 맞아 죽은 동생 라흐맛의 최후가 떠나지를 않는다. 죽기 직전 물을 달라고 했다던 동생의 이야기는 아밀 자신의 근원적 갈증을 자극한다.

<크레바스>의 주인공 남자에게 불안의 정체는 어릴 적 잃어버린 점박이 여동생이다. 대형 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그의 시야에 어느 날 여동생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포착된다. 그러나 폐쇄회로 텔레비전 화면에 한 번 잡혔던 ‘여동생’은 그 한 번을 끝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정말로 여동생인지조차도 불분명하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주인공은 여동생을 찾기를 포기하고 기왕의 일상에 주저앉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표제작의 결말에서도 주인공은 “날아오르는 새”와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의 틈새에 끼인 채 주저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섬>의 주인공은 그나마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찾아가고자 하는 정도의 의욕을 보이지만, 소설집 전체의 기조는 <그림자>의 주인공이 신조처럼 떠받드는 ‘상기하자, 아일랜드’라는 구호에 담겨 있어 보인다. 다수 신교도에 차별 당하고 억눌려 온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 말이다.

한편 올해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은 작가의 대표작인 장편 <길 위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와 장남으로 대표되는 남자들을 뻔뻔스럽게 “만든 그 무엇”, 주인공 경은을 비롯한 여자들을 “느닷없는 분노로” 떨게 만드는, 그리고 경은으로 하여금 “생명이 아니라 거짓”을 포태하게 만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마지막으로 이혜경씨의 참신하면서도 효과적인 비유들을 만나 보자. 좋은 비유는 서사와 주제의식을 적절히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발견과 인식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성한 잔칫집 어귀에서 두드러지게 초라한 옷차림을 한 식구들을 볼 때처럼 맺혀왔다.”

“잠은 언제나 운모조각처럼 얇았고, 작은 소음이나 커튼 틈으로 스며든 빛살에도 쉬 바스러졌다.”

“뽀족하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경은은 혀끝을 동그랗게 말아 가둬버린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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