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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처음 벼베던 날 ‘아이구 내새끼’ 했죠”

등록 2006-05-25 22:04수정 2006-05-26 17:23

귀농 9년차 가난해도 좋은 시간 “경제적 곤란 있지만
풀과 하늘 그리고 나 연결돼 있다는 걸 느껴요”
인터뷰/‘씨앗은 힘이 세다’ 펴낸 강분석씨

“비 내리던 어느 새벽, 우산 들고 밭에 올라 새끼손가락만큼 올라온 콩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예쁘고 장하다는 느낌을 넘어 감동이 밀려왔다.(…)초록색 콩대를 보며 콩알을 넣을 때의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떠올리며 씨앗은 정말로 힘이 세구나, 중얼거렸다.”

“생전 처음 벼를 베던 날, 나도 모르게 아이구, 내 새끼! 하며 벼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던 순간을,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앙성댁’ 강분석(51)씨의 귀농 일기를 묶은 책 <씨앗은 힘이 세다>가 나왔다. 강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앙성닷컴(angsung.com)’에 쓴 글들과 2002년부터 1년 반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앙성댁의 시골일기’가 근간을 이루었다. 열림원과 현대문학북스 등 문학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편집과 기획 일을 하다 독립한 김이금씨의 1인출판사 ‘푸르메’의 첫 작품이다.

“처음엔 정말 멋모르고 내려갔죠. 마흔 되면 농부가 되겠노라던 남편을 따라 시골로 내려가면서도 농사 지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남편이 농사 짓는 동안 저는 읽고 싶은 책이나 읽고 심심하면 텃밭이나 매겠다는 생각이었죠. 좋아하는 산에도 마음껏 다닐 수 있겠다 싶었고요.”

그런 생각으로 강씨가 충북 충주시 앙성면 아랫밤골 아름드리 느티나무 곁에 새 집을 지어 내려간 것은 1997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교사를 거쳐 광고회사와 외국 기업에서 잡지 편집과 홍보 일을 했을 뿐 시골 생활과 농사일에는 전혀 문외한인 그였다.

“그런데 막상 내려가 보니 제 생각이 얼마나 안이한 것이었는지 곧 깨닫게 되더군요. 농사는 혼자 짓는 게 아니더라구요. 시골에서는 하다 못해 유치원 다니는 아이조차도 한 몫의 노동력인 거예요. 결국 저도 농사꾼이 되었죠.”


생전 처음 해 보는 농사일은 당연히 힘에 부쳤다. 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작물은 마음먹은 대로 자라 주지 않았다. 땡볕 아래 몸을 숙이고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는 잡초를 보면서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하다 보니 농사일이 제게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물론 부부가 한 해 내내 땅에 매달려서 얻는 소득이란 게 도시에서의 한 달 수입에도 못 미칠 정도로 딱하긴 하죠. 그렇지만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곤란을 보상해 주는 다른 요소들이 농사에는 있어요. 들에 엎드려 흙을 만지다 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립니다. 풀, 꽃, 하늘, 구름, 그리고 작은 생명들이 사방에서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그들과 제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씨앗은 힘이 세다>는 농사일을 하면서 얻는 깨달음과 감사의 고백이지만, 그와 함께 ‘귀농 9년차’ 농부가 경험한 어려움과 시행착오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희 경우에는 사전 준비와 이해가 부족해서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땅을 구하거나 작물을 고르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도 서툴렀습니다. 이런 실패를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지금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쓸 만한 조언을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강씨가 책에서 밝혀 놓은 ‘귀농 10계명’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난 것들이어서 귀농 희망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듯하다. 그가 밝힌 10계명에는 △부자로 살고 싶다면 귀농을 포기하라 △주택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말라 △힘들더라도 덩어리 땅을 확보하라 △맹지(=진입로가 없는 땅)는 결단코 구입하지 말라 △마을 주민은 사돈 같이(=예의를 지키되 어느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대하라는 등의 조항이 들어 있다.

“지금 농촌에는 어쩔 수 없이 젊은 농사꾼이 필요합니다. 토박이 어른들도 귀농하는 도시 사람들을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추세예요. 꼼꼼히 준비하면 귀농에는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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