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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연구소, 베이징 동포 국문학자와 동행 답사 첫 확인

등록 2006-06-05 21:44수정 2006-06-05 22:13

천안문 서쪽 ‘제29중학교’는
쑨원이 설립한 옛 중국대학
49년 공산당 집권뒤 폐교돼
이육사가 다닌 중국대학 찾아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사진·1904~1944)의 유명한 시 〈광야〉의 후반부 두 연이다. 일제의 지배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실천적 지식인다운 각오와 기개가 잘 살아 있다.

이육사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숱하게 감옥을 드나들며 고초를 겪고 결국 중국 베이징의 감옥(일본 총영사관 감옥으로 추정되는)에서 숨을 거둔 일은 잘 알려져 있으나, 육사의 연보 가운데 그가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대목은 불확실한 채로 남아 있다.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베이징의 중국대학’을 다녔다고 세 차례나 진술했는데, 베이징에는 그런 이름의 대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육사가 다닌 ‘베이징의 중국대학’의 존재가 최근 처음으로 확인됐다. 민족문학연구소(소장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베이징에서 주최한 ‘근대문학과 북경’ 세미나와 현지 답사 과정에서였다. 김 교수와 소속 연구원들은 세미나의 공동 주최측인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조선어언문학계 오상순 교수와 함께 지난 2일 베이징 천안문광장 서쪽에 자리잡은 ‘제29중학교’가 옛 중국대학임을 확인했다. 이날 일행이 찾아간 29중 정문 앞에는 ‘중국대학’ 시절 정문 사진을 배경으로 학교의 역사를 간략히 적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또 학교 안에는 학교의 역사를 사진과 도표 등으로 정리한 자료관도 있었다. 자료를 보면 중국대학은 1913년 쑨원의 뜻에 따라 세워진 국민당 계열 학교로 원래 이름은 국민대학이었으며 1930년에 중국학원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고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 이후 폐교되었다. 김재용 교수와 오상순 교수는 육사가 1925~26년 사이 이 대학에 다닌 것으로 추정했다. 29중의 당서기이자 고급교사인 자오잔링은 “세 상자 분량의 중국대학 시절 학적부를 올여름 개봉할 계획”이라며 “중국대학 출신의 항일열사가 현재 31분인데, 이육사의 재학 사실이 확인되면 32명으로 늘게 된다”며 기뻐했다.

민족문학연구소(소장 김재용·왼쪽에서 일곱 번째) 소속 연구원들이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옆 옛 ‘중국대학’ 정문 앞에서 동포학자 오상순 교수(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이육사가 다닌 중국대학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민족문학연구소(소장 김재용·왼쪽에서 일곱 번째) 소속 연구원들이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옆 옛 ‘중국대학’ 정문 앞에서 동포학자 오상순 교수(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이육사가 다닌 중국대학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편 1일 오후 중앙민족대학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김재용 교수는 “신채호, 이육사, 한설야, 김사량 등의 베이징 내 행적과 베이징 관련 글쓰기는 이들이 단순히 식민지뿐만 아니라 근대 자체를 넘어설 가능성을 모색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박수연·고명철·서영인·하상일·이명원씨 등 소장 연구자들이 포함된 일행은 최옥산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어계 교수의 안내에 따라 단재 신채호가 살았던 골목 등을 답사했으며, 지난해 허베이(하북)성 태항산 아래 항일유적지에 세워진 김사량과 김학철 문학비를 참배했다. 김재용 교수는 “오상순·최옥산 선생 같은 동포 국문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세미나와 답사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연구소는 앞으로도 도쿄와 상하이, 만주 등 국외의 한국 근대문학 현장을 찾아 현지 학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이징/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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