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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상의 남자’에 지친 여성들의 자매애

등록 2006-06-15 21:34수정 2006-06-16 15:03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br>
김연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9800원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
김연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9800원
1997년 제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의 작가 김연(43)씨가 오랜만에 새 장편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실천문학사)를 내놓았다. ‘치자’와 ‘오디’를 인터넷 아이디로 쓰는 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학원강사 치자와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애니메이터 오디는 성장 배경도 성격도 외모도 상이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최승자 시인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라고 했던 서른살 나이, 그리고 폭력적이며 비열한 남자들의 횡포에 분노하며 그로부터 탈출하기를 꿈꾼다는 것.

소설은 치자와 오디가 꾸미는 인터넷 블로그의 글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글을 올리게 된 전후의 정황, 상대방의 글을 보고 난 소감과 댓글 등이 곁들여진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패는 아버지를 치자는 다만 ‘남자’라고 지칭한다. 오디의 아버지는 저명한 대학교수지만 그 역시 남존여비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치자가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썼다시피 두 주인공에게 “남자의 이름은 불쾌이고 공포다.” 지하철 치한과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할아버지들, 심야의 여성 승객을 준엄하게 꾸짖거나 희롱하지 않으면 협박하기 일쑤인 택시 기사들, 직위를 이용해 부하 여직원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직장 상사, 순결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남자친구, 군 입대 전 친구의 ‘총각 딱지’를 떼어 주는 걸 우정으로 아는 청년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폭력과 모독의 다양한 양태들은 소설 속에서 매우 분노에 찬 어조로 나열된다.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세상 남자들에 지친 두 주인공은 동성의 상대방을 향한 연민과 연대 쪽으로 나아간다. “섹스보다 자위가 훨씬 마음에 든다”고 오디는 자신의 블로그에 쓰는데, 소설 말미에서 오디와 치자가 단순한 자매애를 넘어 동성애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말하자면 ‘확장된 자위’에 해당한다.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는 남성들에 대한 분노와 여성들끼리의 자매애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공지영씨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떠오르게 한다. 공교롭게도 김연씨는 공씨의 대학(연세대 영문과) 후배이기도 하다. 여성들 사이의 정치적 연대만이 아니라 성적 결합까지 표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 공간의 용어와 말투를 적극 끌어들였다는 점 등에서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업데’(업데이트)된 버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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