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맞춤법도 모르던 10년차 버스기사
글쓰기 통해 ‘세상’ 바로 봐…‘노동운동’ 시작
지난해 8월 핸들 놓고 ‘작은책’ 편집인으로
글쓰기 통해 ‘세상’ 바로 봐…‘노동운동’ 시작
지난해 8월 핸들 놓고 ‘작은책’ 편집인으로
[이사람] 10년 쓴 글 모아 책 낸 버스기사 출신 안건모씨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
1995년 신문에서 본 <작은책> 광고 하나가 안건모(48)씨 마음을 잡아챘다. 당시 그는 10년차 시내버스 운전기사였다. 글은 많이 배우고 맞춤법, 띄어쓰기 쯤은 알아야 쓰는 것인 줄 알았다. 뜻밖이었다. <작은책>에 글을 투고했고, 글 쓰는 재미를 알았다. <작은책>에 이어 <한겨레> 고정필자가 됐다. 97년에는 생활수기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생활 글쓰기’를 실천한 지 10여년이 흘렀다. 그가 최근 그동안 쓴 글을 모아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냈다.
책은 일터에서 분노하고 기뻐했던 일상의 작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 어려운 말이나 관념 따위는 없다. 때로 거친 말도 튀어나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단속법규에 분노할 때, ‘만만한 게 홍어 X’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노동자들은 자기 입말이 들어가야 재미있어 해요. 그런 게 없으면 자기 생활이라고 느끼질 못해요.” 맞춤법이나 문법은 글을 쓰면서 배워갔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부터 이태준 <문장강화>까지 글쓰기에 도움될 만한 책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생활 글 쓰기 모임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도 꾸준히 나갔다. 지금은 그동안 배운 걸 바탕으로 노동자들에게 생활 글쓰기 강의도 나간다. “노동자들 글 쓰기에 도움 되는 책이 생각보다 드물더군요. 책을 꼭 한 권만 더쓰고 싶은데, 바로 노동자 글쓰기에 관한 거죠.”
안씨는 버스회사에서 알아주는 ‘꼴통’이었다. 고용주들 각종 횡포에 끊임없이 맞섰다. 어용노조에 맞서 ‘노조민주화위원회 버스일터’도 조직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통신보안대에서 군대 시절을 보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빨갱이 짓이라고 알았을 정도로 ‘운동’이니 ‘노조’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역시 글이었다. 동네 주민독서회에서 우연히 빌려 본 만화책 <쿠바혁명과 카스트로>가 인생을 바꿨다. “‘승리를 쟁취한 쿠바민중’이란 구절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내가 모르는 다른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그때부터 노동운동에 빠져들었다.
정년까지 버스 운전기사를 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좀더 넓은 바닥에서 운동을 해보자”고, 버스 운전은 2004년 그만뒀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를 처음 글쓰기로 이끌었던 <작은책>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행인 겸 편집인이 됐다. 직원이 4명뿐이어서 영업부터 원고청탁까지 모두 거들어야 하고, 월급은 반토막이 났지만 여전히 활기차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살맛 느끼는 세상 말입니다.” 핸들은 놓았지만 그는 여전히 일터와 노동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였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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