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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철없는 부모’보다 먼저 ‘철든’ 18세 소녀

등록 2006-06-22 20:43수정 2006-06-23 16:26

18세, 첫 경험<br>
은미희 지음. 이룸 펴냄. 9700원
18세, 첫 경험
은미희 지음. 이룸 펴냄. 9700원
<18세, 첫 경험>은 은미희(46)씨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수상쩍은(?) 어감과는 달리 소설은 매우 건전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주인공인 열여덟 살 소녀 현영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현영이 처한 조건은 그다지 ‘건전 모드’는 아니다. 풍채 좋고 이목구비 뚜렷한 아비는 근사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가서는 며칠 만에야 향수 냄새 진하게 풍기며 돌아오곤 한다. 아비의 직업은 속칭 제비. 그런 아비와 천생연분 찰떡궁합인 어미는 아비에게 속아 사랑과 돈을 빼앗긴 여자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야멸차게 쫓아버리고는 밤이면 남편의 품에서 홍홍거린다. 아비 못지않게 외모 수려하고 노래솜씨 일품인 어미의 소원은 늙다리 가수가 되는 것.

문제는 아비도 어미도 현영과 두 동생에게 그다지 헌신적이거나 충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자들을 후리던 아비는 아내의 옛 동창과 사랑에 빠져 아예 집을 나간다. 상심한 어미는 아마추어 가수가 되어 밤무대며 단란주점을 전전하다가는 역시 영감 하나를 꿰차고 가출. 여동생 현주마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더니 티켓 다방 종업원으로 풀린다. 부모의 지원은커녕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된 현영은 제가 모은 돈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매진한다.

“하루 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는 것, 그리고 철없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는 것, 내 십대의 초라한 역사를 서둘러 덮어버리고 싶은 것. 그랬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생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었다.”

<18세, 첫 경험>에서 엄마와 딸, 어른과 아이의 처지는 뒤바뀌어 있다. 철없는 부모를 대신해서 집안을 건사하고 스스로를 양육하는 것은 딸의 몫이다. 이런 부모-자식도 있는 것이다. 부모의 방황과 무책임이 자식의 분발을 촉구하는 역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영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얌전하고 모범적이다. 현실 속에서는 더없이 바람직하고 미쁘겠으되 소설 주인공으로서는 매력이 반감되는 느낌. 독자의 속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은 현영이 남자친구 석현(그 역시 비록 공부 대신 춤에 빠져 있을망정 지극히 건전하고 어른스러운)과 나눈 첫 키스의 경험을 가리킨다. 그리고, 소설은 일단 해피엔딩. 엄마에 이어 아버지가 돌아오고 동생 현주도 귀가한다.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던 현영의 안쓰러운 주문이 그나마 효력을 발휘한 것인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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