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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와 소설은 가라 ‘낙서’의 시대 올지니

등록 2006-06-22 20:45수정 2006-06-23 16:26

낙서문학사<br>
김종광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1만원
낙서문학사
김종광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1만원
문학의 본질과 출판시장 일갈한 ‘낙서문학사’ 연작
월드컵 때맞춰, 축구·섹스에 미친 세태 빗댄 ‘절멸의 날’ 등
한층 날선 풍자로 요리한 9편의 ‘이야기소설’ 제맛
<경찰서여, 안녕>의 작가 김종광(35)씨가 새 소설집 <낙서문학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표제작에 해당하는 두 편의 연작을 포함해 아홉 개의 단편이 묶였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김종광씨의 소설은 김유정·채만식에서 이문구·성석제로 이어지는 ‘이야기 소설’의 계보에 속한다. 소설이란 무릇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지만, 굳이 ‘이야기 소설’이라 특화하는 것은 해학과 풍자를 도구 삼아 세태와 인간의 이모저모를 재미지게 요리하는 유형의 소설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특히 고향을 무대로 펼쳐지는 김종광씨의 어떤 소설들은 의뭉스러운 웃음 속에 슬픔과 분노를 숨긴 데에서 동향 선배인 이문구를 떠올리게도 한다.

<경찰서여, 안녕>과 <모내기 블루스>에 이은 세 번째 소설집이 되는 <낙서문학사>에서 김종광씨의 해학과 풍자는 한층 날이 서 있어 보인다. 표제작인 <낙서문학사 창시자편>과 <낙서문학사 발흥자편>에서부터 그러한데, 이 두 작품이 문학의 본질과 작가라는 존재, 출판시장의 문제 등 작가 자신과 무관할 수 없는 민감한 대목을 겨냥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두 소설은 ‘낙서’가 문학의 핵심 장르로 부상한 2030년 무렵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각기 낙서문학을 창시한 ‘유사풀’과 그 발흥자인 ‘성철호’의 평전을 쓰려는 작가가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그들에 관한 증언을 채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문학의 중심 장르로 부상하는 낙서가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알기 어렵다. ‘낙서’라는 보통명사의 사전적 의미에서 유추해 보는 수밖에는 없다. 소설 속에서 확실한 것은, 기존의 문학 장르를 나름대로 섭렵하고 시로써 신춘문예를 통과한 유사풀이 “사악한 시, 추잡한 소설, 역겨운 수필”을 운운하며 그것들과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서 낙서를 주창했다는 사실이다.

의뭉스러운 웃음 속 슬픔과 분노

유사풀의 요절 이후 낙서문학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는데, 재벌 3세 출신 시인 성철호의 ‘장난’이 개입한 결과임이 드러난다.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내걸고 낙서문학상을 제정했으며 독자들에게 막대한 양의 도서상품권을 뿌리면서 낙서문학 동인지를 사도록 했던 것이다. 한동안 ‘돈지랄’를 하다가 제풀에 싫증이 나서 문학판을 떠난 성철호의 일갈은 그런데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한테 돈으로 문학했다고 욕하는 새끼들, 그 새끼들은 대체 얼마나 깨끗했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개나 소나 다 돈 보고 문학하던데, 왜 우리만 보고 지랄들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

‘낙서문학사’ 연작은 두 편에서 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어조는 다른 작품들로도 확산된다. 허균이 건국했다는 나라 ‘율려’로 단체여행을 떠난 일행의 여행 소감을 입말투로 들려주는 <율려 탐방기>, 역시 율려를 무대로 매춘부들의 폭동이 내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신문기사 식으로 중계한 <절멸의 날>, 2020년께를 배경 삼아 한 기업의 구조조정과 패망 과정을 추적한 <쇠북공기전 망징패조편>, ‘조싼’이라는 이름의 엽기 폐기물 반입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여론과 행동의 추이를 그린 <조싼은 헤맨다> 등에서 두루 그러하다.

“경제 어렵다는 새끼들이 개나 소나 해외 나가냐고.”

<율려 탐방기>의 끝부분에서 한 등장인물이 욕설 섞어 내뱉는 말에 어쩐지 뜨끔해지지 않을 이가 있을까. 굳이 휴가나 방학철을 기다릴 것도 없이 언제나 성황을 이루는 인천공항의 인파들, 그리고 해외의 주요 여행지마다 발에 차이듯 걸거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생각해 보라.

‘배설’에 가까운 풍자는 정제돼야

‘언론군의 엽기 폐기물’이라는 조싼을 가리켜 “좀비보다 비열하고 드라큘라보다 잔인하고 야차보다 끔찍한 해악 덩어리”(<조싼은 헤맨다>)라 규정하거나, “언론권력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카멜레온”(<절멸의 날>)이라고 설파할 때, 권력과 유해 폐기물로 변질된 언론에 대한 작가의 분노는 생생하게 전해진다.

한편, 작가 스스로 “월드컵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전 세계인에게 바치는 서정시”라 설명하는 <절멸의 날>은 지금과 같은 ‘월드컵지절’에 특히 흥미롭게 읽힌다. 축구와 섹스를 결합시킴으로써 자국민을 통솔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나라 율려에서 매춘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축구경기가 중단된다. 당국은 군대를 출동시켜 폭동을 진압하고 실권자인 축구국장은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이제 우리는 국민의 열성과 힘을 모아 다시, 축구로, 축구로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러나 ‘실존 클리토리스’ 팀과 ‘허무 페니스’ 팀 사이의 축구 재개전은 매춘부가 주도하는 혁명을 불러오고 나아가 율려국 전체가 극심한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 미친 나라에 살면서 어떻게 안 미칠 수 있겠나?” 소설 말미에 나오는 노인의 반문은 스포츠와 섹스에 미쳐 돌아가는 듯한 세태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음이다.

대상이 문학이든 언론권력이든 스포츠 광풍이든 김종광 소설의 풍자는 거침이 없는 만큼 통쾌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근본적이고 진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비판이라기보다는 배설에 가까운 풍자는 적은 고사하고 우리편을 설득하고 부추기는 데에도 한계를 지니기 십상이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냉정해져야 한다는 철칙은 소설에서도 어김이 없다. 그런 점에서 소설집 <낙서문학사> 속의 풍자는 좀 더 정제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설집의 주조를 이루는 거친 풍자와는 구분되는 작품이 <김씨네 푸닥거리 약사>와 <낭만 삼겹살>이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고향과 그곳 어른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특히 <낭만 삼겹살>은 반생을 탄광 노동자로 일한 끝에 진폐증에 걸려 죽어가는 주인공 ‘황낭만’의 마지막 나날을 따뜻한 슬픔으로 껴안고 있어 인상적이다. 작가가 날선 풍자로 치닫느라 놓친 자신의 미덕을 이 작품은 의연히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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