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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상에 뱉어낸 실패자의 분노

등록 2006-06-29 20:42수정 2006-06-30 16:48

내 머릿속의 개들<br>
이상운 지음. 문학동네 펴냄. 8500원
내 머릿속의 개들
이상운 지음. 문학동네 펴냄. 8500원
짧은 분량의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으로 이상운씨의 <내 머릿속의 개들>이 선정되었다.

<내 머릿속의 개들>은 실패자의 분노에 관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실업자인 ‘고달수.’ 그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은 ‘지금 실업자인 사람’과 ‘조만간 실업자가 될 사람’으로 나뉜다. 경쟁과 효율성을 작동원리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업자란 필연적인 부산물이라는 인식이다.

하릴없이 반지하 방에서 뒹굴던 고달수에게 어느날 성공한 옛 친구 ‘마동수’가 연락을 취해 온다. 잘나가는 실치미술가가 되어 나타난 그는 달수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너와 내가 힘을 합해서 너와 나와 내 마누라를 재배치해보자”는 것. 말인즉 거창한데, 요는 달수로 하여금 동수의 부인 ‘장말희’를 유혹해서 두 사람이 이혼하도록 해 달라는 것. 문제는 말희가 “어마어마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숨막히고 처참하게 뚱뚱”하다는 데 있다. 애초에 동수와 말희는 서로의 빈곤과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고도의 생산성이 보장된 탁월한 합병”으로 결혼을 한 터였으나, 이제 잘나가는 설치미술가는 뚱보 아내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상식과 견결한 윤리감각의 소유자인 달수는 처음에는 동수의 제안을 한갓 농담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보상을 뿌리치지 못하고 말희와 데이트를 시작한다. “시적이고, 연극적이고, 모험적이고, 실존적이고, 통속적이고, 정치경제학적이고, 상업적인 데이트”를.

<내 머릿속의 개들>은 얼핏 터무니없어 보이는 설정 속에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과 거부 의지를 내장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정신과의사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독백투의 형식 덕분에 그의, 그리고 작가 자신의 세계 인식은 가감이나 분식 없이 날것대로 표출된다. 소설 속 한 인물에 따르면 인류의 출현 이래 세상이란 “오백억 개의 영혼이 있는 어마어마한 시장과, 그 시장을 쥐고 흔드는 비열하고 천박한 자본의 독재자들과, 그 독재자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가련한 노예들”로 이루어져 왔다. 주인공의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 보면 “결혼식은 새로운 소비자의 탄생을 소란스럽게 선전하기 위한 장치였고, 장례식은 한 소비자의 소멸을 소란스럽게 은폐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견해가 낙오된 아웃사이더의 항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동수처럼 성공한 이들에게 세계란 기회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행운과 능력을 과시할 기회는 따로 얼마든지 있을 테고, 지금 이곳은 실패자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다. 패자인 달수의 눈에 승자들은 어떻게 보였던가.

“그들은 끼리끼리 술을 마시고, 토론을 하고, 히죽대고, 짖어대고, 뭔가를 물어뜯고, 교미를 하고, 똥오줌을 싸고, 죽어가고, 새끼를 낳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인생이냐고 누군가 힐난조로 묻는다면, 그렇다고밖에는 달리 대답할 도리가 없으리라. 달수는 이런 승자들의 파티에 가서 한바탕 난동을 피우다가는 그예 밖으로 쫓겨난다.


“그들은 교양 있고, 심심하고, 가난하고, 정치경제학적 실존적 고뇌를 등에 지고 있는 실업자 철학도인 저를 짐처럼, 항아리처럼, 미치광이처럼, 환자처럼, 관처럼, 떠나가는 배처럼 운반했습니다.”

운반이라는 이름의 추방. 달수로 대표되는 낙오자들의 운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달수의 스승이 할하듯 던진 질문마따나, “이런 체제가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동수의 의문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의 결말에 작가의 답은 암시적으로 들어 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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