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로부터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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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평짜리 독방/ 붉은 포승에 묶여 누우면/ 손목을 조이는 냉기/ 후 수갑 위에 입김을 불면/ 하얀 입김 끝에서 날아오르는, 날아오르는// 아, 파랑새”(시집 <우리 시대의 예수> 중 ‘파랑새’ 부분).
1985년 ‘<민중교육> 사건’으로 수감됐던 교사 시인 김진경(52)씨는 사방이 막힌 비좁은 독방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았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도, 몸통을 조여드는 오라도 파랑새를 꿈꾸는 상상력을 빼앗지 못했다. 독재정권만 몰아낸다면, 억압체제만 끝장낸다면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파랑새를 만들어냈다. 2000년 김진경씨는 15년 만에 교육 현장으로 복귀했다. 교육운동가로서 우리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길을 찾아왔던 그가 다시 선 교단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미래로부터의 반란>은 교육운동가의 양심을 지니고서 4년 남짓 교육 현장에서 부딪친 문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쓴 ‘교육에세이’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감옥의 차가운 벽은 무너졌다. 온 나라를 짓눌렀던 독재도 사라졌다. ‘참교육’을 외치다 해직됐던 1500명의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통받고 있고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참교육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이다. 자유로운 민주세상이 열렸다는데, 학교 안에선 원한에 사무친 귀신들이 출몰한다. 학교는 낡은 시대의 황폐한 병영질서를 고수하고 있다.
학부모는 ‘우리 아이만이라도 무사히 살아남을 방법이 없을까’만 고민하고, 교사들은 ‘우리 교사들의 밥그릇만이라고 지키는 방법이 없을까’만 궁리하고, 교육관료들은 ‘우리 관료들의 자리만을 그대로 지킬 방법이 없을까’만 따진다. 아이들의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대안은 찾을 길이 없다. 아이들은 입시 경쟁이라는 콜로세움에 갇혀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사생결단의 검투사가 되어 있다. 창의력이니 상상력이니 하는 말들은 이 죽고살기 식 싸움터에서는 사치다. 수능시험 부정행위가 난무하고 교사가 학생의 답안지를 바꿔치고 성적 부풀리기가 만연한다. 공교육은 무력해지고 사교육이 창궐한다. 이 학벌사회에서 대학서열의 꼭대기로 올라서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늘끝만큼이라고 더 앞서가야 하기 때문이다.
“입시경쟁 콜로세움에서 사생결단 검투사로…
대학서열 해제 넘어 학교의 재탄생 만이 희망”
교뉵 일선 벼랑에서 보낸 김진경씨의 ‘파랑새론’ 지은이가 진단하는 ‘왕따 현상’은 이 총체적 반교육 질서의 필연적 산물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훈육하는 공간일 뿐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특기와 적성과 개성을 몰수당한 채 억압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순응할 수 없는 아이들을 순응시키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이 비인간적 질서에 대한 잠재적·음성적 저항성을 ‘약한 고리’를 향한 공격으로 분출한다. 아이들은 사회의 계급질서를 따라 익힌다. ‘일진회’ 따위의 폭력서클은 이제 문제아들의 일탈 현상이 아니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넉넉한 우등생 아이들이 특권의식을 품고서 ‘못난’ 아이들을 따돌리고 괴롭힌다.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그 폭력적 문화도 용서된다.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가 낳은 괴물이다.
지은이는 학벌사회를 해체하고 대학서열화를 깨는 것만으로는 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채 진즉에 스스로를 낙오자로 낙인찍어버린 하층 계급의 아이들에게는 대학 서열 해체도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아이들이 역량과 적성에 맞게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 없이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모두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 근원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개혁 논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색칠만 다시 하는 포장공사일 뿐이다. 상황은 지난 시대보다 더 절망적이고 더 암울하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는 또다시 희망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갈 수 없는 절망의 벼랑끝에 우리 사회가 서 있기에 이제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감옥 안에서 모두가 입김을 모아 파랑새를 만들어내야 할 때인 것이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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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열 해제 넘어 학교의 재탄생 만이 희망”
교뉵 일선 벼랑에서 보낸 김진경씨의 ‘파랑새론’ 지은이가 진단하는 ‘왕따 현상’은 이 총체적 반교육 질서의 필연적 산물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훈육하는 공간일 뿐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특기와 적성과 개성을 몰수당한 채 억압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순응할 수 없는 아이들을 순응시키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이 비인간적 질서에 대한 잠재적·음성적 저항성을 ‘약한 고리’를 향한 공격으로 분출한다. 아이들은 사회의 계급질서를 따라 익힌다. ‘일진회’ 따위의 폭력서클은 이제 문제아들의 일탈 현상이 아니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넉넉한 우등생 아이들이 특권의식을 품고서 ‘못난’ 아이들을 따돌리고 괴롭힌다.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그 폭력적 문화도 용서된다. 입시 위주의 교육체제가 낳은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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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학벌사회를 해체하고 대학서열화를 깨는 것만으로는 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채 진즉에 스스로를 낙오자로 낙인찍어버린 하층 계급의 아이들에게는 대학 서열 해체도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아이들이 역량과 적성에 맞게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 없이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모두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 근원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개혁 논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색칠만 다시 하는 포장공사일 뿐이다. 상황은 지난 시대보다 더 절망적이고 더 암울하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는 또다시 희망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갈 수 없는 절망의 벼랑끝에 우리 사회가 서 있기에 이제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감옥 안에서 모두가 입김을 모아 파랑새를 만들어내야 할 때인 것이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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