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간의 기록…거쳐 수차례 옮겨
“구한말 역사 재조명 귀한 자료”
“구한말 역사 재조명 귀한 자료”
‘(6월)18일 비가 종일 왔다. (한점대 집에) 그대로 머무셨다. 환후는 그만하시다. 오후에 목아픔 증세가 있으셨다. (다리의) 고름이 저절로 터졌다. 감길탕 1첩, 개고깃국 1그릇, 붕어 곤 것 1그릇을 올렸다. 민긍식이 먼저 충주 노은으로 갔다.’
명성황후가 1882년 임오군란을 피해 궁궐을 떠난 직후인 6월13일부터 8월1일 환궁하기까지를 기록한 <임오유월일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시 향토사료관은 “최근 기증받은 서책과 유물 191건 279점을 분류하면서 <임오유월일기>를 발견했다”며 “이 기록은 명성황후의 피란 행적을 정확히 알려주는 유일한 현존 자료”라고 30일 밝혔다.
<임오유월일기>는 가로 14.7㎝, 세로 20㎝ 크기에 한지 8쪽 책으로, 피란 51일의 △날씨 △명성황후의 건강 상태 △올린 음식 △만난 인물, 수행자 △이동 경로 등이 일기체로 간략하게 적혀 있다.
이 일기에서 명성황후는 10일 윤태준, 13일 서울 벽동 민응식의 집에서 머물다 14일 임천군수 이근영, 15일 여주 단강 권삼대, 16일 한점대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17일부터 장호원 등 충주 일대 민씨 일가 몇 곳을 거쳐 민영위의 집에서 환궁했다.
시 향토사료관은 “이 일기는 명성황후의 심경 등을 적은 글귀는 없으나 건강과 난을 피한 과정, 수행자와 만난 이가 정확히 기록돼 있는 유일한 기록이어서 임오군란 전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 일기는 피란 동안 명성황후를 모셨던 이 가운데 1명이 기록해 두었다 환궁 이후 정서한 것으로 보이며, 민응식의 딸이 갖고 있다 지난 5월 다른 유물들과 함께 향토사료관에 기증했다.
대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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