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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밑바닥 인생이 온몸으로 써내려간 ‘희망’

등록 2006-07-06 20:26수정 2006-07-07 14:50

개 같은 인생들<br>
강기희 지음. 화남 펴냄. 9900원
개 같은 인생들
강기희 지음. 화남 펴냄. 9900원
소설가 강기희(42)씨가 다섯 번째 장편소설 <개 같은 인생들>(화남)을 펴냈다.

소설은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의 ‘희망여인숙’을 무대로 펼쳐진다. 석면공장에서 일하다가 얻은 폐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회생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쫓기다시피 퇴원한 주인공 ‘정만호’가 생의 마지막 거처로 삼고 찾아온 곳이 바로 희망여인숙. 희망여인숙은 여느 숙박업소와는 다르다. 투숙객들에게 하루 세 끼 밥값조로 단돈 천원만 받으며 그들이 돈을 벌어 자립해 나가도록 돕는 일종의 사설 쉼터다.

같은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는 그 역시 석면으로 인한 병을 얻어 어린 아들을 남긴 채 먼저 세상을 뜨고, 만호의 유일한 소망은 네덜란드로 입양되어 간 아들을 한번 만나보는 것. 시장 내 식당과 애견가게 등지에서 일하며 착실히 돈을 모으고, 독신이나 마찬가지인 여인숙집 ‘며느리’와 연정이 싹트는 등 만호의 삶에는 마침내 희망의 등불이 켜지는 듯하다. 그러나 며느리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여인숙 투숙객 ‘은 사장’이 깡패들을 동원해 만호를 죽이고 며느리를 납치한다….

소설은 죽어서 의대 해부학 실습용으로 기증된 만호의 혼령을 화자로 삼는다. 프롤로그에서는 해부학 실습교실의 풍경이 주검이 된 만호의 눈으로 관찰되며, 에필로그는 장기기증인 합동추도식에 참석한 여인숙 식구들과 만호의 작별 장면에 할애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의 8개 장이 소설의 본문이다.

깡패들에게 납치되는 순간 경찰이 출동한 덕분에 화를 면한 며느리는 에필로그에서 만호의 주검을 향해 말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여인숙은 다시 재밌어졌어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요.(…)한동안은 그 놈들 때문에 편안한 쉼터가 되지 못했는데 이제 다시 희망여인숙이 된 것 같아요.”

소설은 희망의 근거를 빼앗긴 이들의 희망을 향한 몸부림을 보여준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이 사회의 바닥까지 떠밀린 이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온몸으로 쓰는 ‘희망’이라는 글자가 안쓰럽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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