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역사
재컬린 더핀 지음. 신좌섭 옮김. 사이언스 북스 펴냄. 값 2만5000원
재컬린 더핀 지음. 신좌섭 옮김. 사이언스 북스 펴냄. 값 2만5000원
잠깐독서
과거는 과거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이어서 한권의 방대한 역사책만 읽으면 될텐데, 새로운 역사책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뭘까? 사람이 병에 걸리고, 이를 치료하는 역사를 다룬 <의학의 역사>에서 이 답을 찾는다면 좀은 어리석은 일일까? 이 책은 사람이 아프고 죽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지만 질병과 죽음을 인식하는 의사의 진단과 치료 방법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학의 발전사를 통해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죽는 삶의 과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역사책을 봐야 하는 것은 인간 문명의 발달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의 역사>는 근대 서양의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의 역사부터, 전염병보다 생활습관병이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등장해 오늘날 각광받는 가정의학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서양의학의 전체 역사를 발전 역사 순으로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기원전부터 유행했던 흑사병, 매독 등부터 현대의 에이즈까지 전염병이 인간의 역사와 의학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통찰한다. 또 의사와 환자와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면서 제대로 된 의사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와 함께 여러 질병을 의사들과 환자들이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병리학의 역사, 최초의 수혈부터 다시 논의해보는 혈액의 중요성, 광기로부터 환자의 인권을 지켜내 오게 만든 정의과학의 역사 등을 재구성한다. 한편으로는 출산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출산이 의학의 영역이 아닌 원래 여성의 영역임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학의 역사>는 하나의 테마별로 의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문제 의식을 던져분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면 문득 마음 한쪽 구석에 작은 불안이 차 있는 것을 느낀다.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치료법도 언제 오답으로 판명될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타임머신이 없어 미래로 가지 못하고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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