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대하는 방식 시대따라 변화무쌍하죠”
모두 꺼리는 일에 유달리 애착과 매력을 느껴 ‘올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 공무원 박태호(54·월드컵공원사업소 환경관리팀장)씨도 그렇다. 91년 노인복지과로 발령이 나 우연히 묘지·화장장 등의 관리를 맡게 되면서 그는 처음으로 장묘 문제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10년. 2001년 장묘 업무를 손에 놓을 때까지 그는 벽제화장장 개축, 용미리 납골당 추가 건립 등 숱한 장묘 업무와 씨름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이에 쉽게 편승한 행정기관의 무사안일주의로 비록 불발에 그쳤으나, 서초구 원지동에 추모공원을 세우자고 계획안을 내놓은 것도 그였다.
장묘 업무에 골몰하다 보니 학문적인 관심도 생겨났다. 2000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3년반 만에 학부과정을 끝냈다. 칼을 빼든 참에 아예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한문 서적을 읽어가면서 우리 나라의 장묘 문화와 역사를 공부했다.
장묘, 장례, 죽음의 문제에 깊이 탐색해온 그가 최근 책을 펴냈다. <장례의 역사>(서해문집 펴냄). <서울장묘시설 100년사>, <세계묘지문화기행>에 이어 장묘에 관한 세 번째 저서다.
그가 보기에 사람은 어느 시대나,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달랐다. 고대~삼국시대엔 장례를 화려하고 위엄있게 치르는 ‘후장’을 선호했다. 그러나 불교가 들어오며 화려하게 치장한 무덤은 사라진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이며, 중생은 끊임없이 삼계육도를 돌고 돌며 생사를 거듭한다는 사상 때문이었다. 화려하게 무덤을 꾸미는 풍습 대신 간소한 ‘박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전래되면서 화장은 권장 대상에서 ‘엄벌’대상으로 변했다.
박씨는 그러나 “사람들이 화장을 기피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 때 확고히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제대로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화장장과 허름한 공동묘지는 화장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편화시켰지요.”
그는 삶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지만 죽음은 평등하며, 그래서 죽은 자 누구나 존귀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외국의 한 묘지에서 같은 크기로 꾸며진 장군의 무덤과 사병의 무덤을 바라보며, 죽음과 삶에 대한 한국인의 허상을 다시 돌아봤다고 했다.
정년을 3년 남겨둔 그는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한국장례역사 전공서를 쓰는 일”을 꼽았다. 아마 장묘 문제는 그를 평생 은퇴시키지 않을 것 같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