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둥근 달
정찬 지음. 현대문학 펴냄. 9000원
정찬 지음. 현대문학 펴냄. 9000원
중견 작가 정찬(53)씨의 다섯 번째 소설집 <희고 둥근 달>(현대문학)이 출간되었다. 환상과 현실의 교차 속에 진실과 구원, 삶과 죽음의 문제를 천착한 열 개의 단편이 묶였다.
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슬픔의 노래>(1995)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소설집에서도 연극적 구도와 문법을 즐겨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들고>의 주인공은 연극 무대 디자이너이며, 표제작의 주인공은 연극 배우이고, <유랑극단>은 아예 연극 속의 이야기임이 소설 말미에서 밝혀진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 형식으로 서술한다든가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상담하는 방식을 취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연극적 기법이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실과 환각 또는 꿈을 한데 버무리는 구성에 주목할 일이다. 현실이 객석이라면 꿈과 환각이란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라 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꿈에 관한 통찰에서 보다시피, 꿈 또는 환각으로서의 연극 무대란 현실의 억눌린 욕망이 일그러진 채 드러나는 계시의 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정찬 소설의 연극적 특성은 그의 주제의식과도 통하는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또는 배우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은 주체의 분열 또는 분리를 전제로 한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들고>에서 주인공 남자가 자신과 ‘동일인’으로 여겨지는 낯선 여자를 만나는 일, 표제작에서 칼리굴라 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빌려 이혼한 전처를 살해하는 일, <인간의 흔적>에서 소설 속 설정이 자신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한다며 소설가에게 전화를 걸어온 독자, <허공을 걷다>에서 러시아 집시 여자의 안내로 자신의 과거를 대면하는 주인공, <낙타의 길>에서 신화 시대에서부터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 정체를 바꿔 가며 영원히 유랑하고 있다는 이방의 인물 등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결같다: 잃어버린, 진정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그것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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