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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삶이 거대한 무덤일지라도…

등록 2006-08-03 18:38수정 2006-08-04 15:11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br>
이후경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9800원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이후경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9800원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는 이후경(46)씨의 첫 소설집이다. 작가의 본명은 ‘이경혜’인데, 이번 소설집 발간을 계기로 심기일전하겠다는 각오로 새 이름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1992년 등단작인 중편 <과거 순례>에서부터 최근작인 표제작까지 근 20년에 걸쳐 쓴 중단편 일곱이 묶였다. 그만큼 과작이었다는 뜻이겠고, 앞으로는 더 분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수록작들이 대체로 ‘사후적’이라는 점이 특징적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의 어제라는 점에서 모든 사태와 상황은 사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후경씨의 소설들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사전에 발생하고 정작 소설에서 얘기되는 것은 그 뒷이야기인 양상이 뚜렷하다. 표제작에서 주인공 ‘예련’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지켜본 엄마의 자살이 준 충격 때문에 정상적인 생을 영위하지 못한다. 제목에서부터 시사적인 <과거 순례>에서는 주인공 ‘윤영’이 자신의 생의 꼬인 실타래를 풀고자 과거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난다. 각각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은 유한 커플과 초로의 밑바닥 커플의 여관/여인숙 투숙을 소재로 한 <폭설>과 <낙원장>에서도 그들의 현재는 약속이나 한 듯 과거에 주박되어 있다. <폭설>의 커플이 만난 것은 여자의 애인이 갓 스물의 나이에 죽은 사건 때문이었고, <낙원장>의 남과 여는 결혼 자금으로 여투어 둔 돈을 허무하게 날려 버린 뒤 남은 얼마간의 돈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여행길에 나선 참이다.

주인공들의 생의 행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커다란 비중을 지니는 사건들이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인 경우가 많다. <낮달>의 가장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숨을 거두고, <바람의 무덤>에는 태어나자 마자 숨진 아이를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이들이 나오며, <모독>은 아예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된 여성을 화자로 삼아 진행된다. <과거 순례>에서 주인공 윤영의 불행 의식에 한 몫을 한 친구 ‘수민’은 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참이다.

해설을 쓴 강유정씨의 지적마따나 작가는 삶을 하나의 거대한 무덤으로 파악하고 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완전한 절망과 비극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이후경 소설의 미덕이 있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와 남편의 불륜을 확인한 뒤에도 주인공이 환상 속의 태동을 느끼는 <과거 순례>의 결말, 여인숙 주인 모녀의 악다구니 속에서 오히려 역설적인 애정을 느끼는 <낙원장>의 두 주인공에게서 그 점을 엿볼 수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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