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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연애 질병’ 처방전

등록 2006-08-03 20:14수정 2006-08-04 14:29

로맨스 약국<br>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마음산책 펴냄. 1만원
로맨스 약국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마음산책 펴냄. 1만원
그는 왜 전화하지 않는걸까? 나는 왜 나쁜 남자만 만날까?
젊은 언어학자가 ‘언어’를 통해 꿰뚫어본 연애학
‘사랑은 말 안하면 모른다’는 가설에서 시작해
연인들끼리의 농담·소통 등 ‘경우의 수’ 51개 진단
#그는 자주 만나자는 법이 없다. 전화도 잊을만 하면 한번씩 한다. 하물며 ‘이벤트’를 바랄까. 참 무심한 사람이라고 푸념하기엔 내 청춘이 아깝다. 우린 정말 사랑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왜 다들 명품을 좋아하는지. 단지 우아하고 고상한 스타일을 원했을 뿐인데…. 주머니 사정상 여성 취향을 바꿔야 하는걸까?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린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보내온다. “헤어졌으니 그만!” 외쳐도 아랑곳 없다. 스토커로 변신한 옛애인을 어쩔까나.

연애로 인한 편두통을 앓고 있는 이런 청춘남녀는 <로맨스 약국>(마음산책 펴냄)에 가보자. 365일 24시간 개점. ‘연애의 언어에 대한 51개의 처방전’ 있음. “때로는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가고 때로는 독감처럼 오래 앓게 하는, 백신도 없는, 감염률 100%의 질병.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을만큼 심하지 않고 완치되지 않아도 그냥 살아갈 수 있지만 가끔 마음에 반창고 한 개가 필요하다”면 말이다.

연애로 인한 질병 치유에 나선 ‘약사’는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언어학자 박현주씨. 일리노이 주립대 언어학과 박사 과정중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번잡한 세상사를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취미’를 십분 살려 사람들이 연애를 어떻게 앓고 있는지 꿰뚫어봤다. 진단시약은 ‘언어’. 연애 9단이 되는 비법을 전수하는 다른 ‘연애학’ 책들과의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다. 하필 언어인가. 연애는 남녀간의 관계이고 관계의 이음새는 언어, 언어로써 아파하고 언어로써 낫게 하고자 함이 저자의 바람이다. ‘연애의 언어학’이라고 하면 통사론이니 음운론이니 하는 전문용어를 떠올릴텐데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20~30대가 공감할 대중문화 텍스트와 저자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연애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지적 통찰에 이르니, 신세대 저자의 소통하는 글쓰기가 연애라는 주제와 썩 어울린다.

‘사귄다’는 말은 연애의 시작점


사람들은 내사랑만은 특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3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모든 연애는 일정한 패턴 속에서 변주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업 멘트는 대체로 뻔할뻔. “제 첫사랑과 닮으셨어요” “이건 당신에게만 털어놓는 말이야” “말 안해도 알지?” 한번쯤 들어보거나 해봤을 것이다. 진부하게 반복되는 이런 말들 속에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본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언어학자가 보기에 ‘사귄다’는 지점은 언제부터일까. 눈 맞추면? 손 잡으면? 눈치챘을 거다. 바로 “우리 사귈까”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발화’를 시작점으로 본다. 연애라는 모호한 감정 게임에서 ‘선언이 없는 관계’는 발뺌하기 십상. 선언으로서의 말은 거대한 울림을 지닌다. 말의 구속력은 서로의 관계를 책임 지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식이라면 관계가 파기될 때 뒤로 숨기에 딱 좋다. “실은 널 사랑하지 않았어”라고. 그런데 ‘사랑과 우정 사이’인 유사연애단계라면 외려 말을 하면 깨진다. 둘 사이에는 우정보다 설레는 ‘화학반응’은 있지만 로맨스는 아니라는 묵시적 합의가 있기 때문인데 어느 한쪽이 “사귈까?”라고 입을 떼는 순간 부담없고 가볍던 관계는 일그러지고 만다.

사랑은 꽃이다. 우리의 삶을 꽃피웠다가 지게도 하고 기운을 북돋웠다가 다시 병들게도 한다. 사랑은 불이다. 연애의 온도는 사람의 기질과 관계의 밀도에 따라 다를지라도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 속에는 장작불이든 모닥불이 불이 있다. <로맨스 약국> 본문속 노석미씨 그림
사랑은 꽃이다. 우리의 삶을 꽃피웠다가 지게도 하고 기운을 북돋웠다가 다시 병들게도 한다. 사랑은 불이다. 연애의 온도는 사람의 기질과 관계의 밀도에 따라 다를지라도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 속에는 장작불이든 모닥불이 불이 있다. <로맨스 약국> 본문속 노석미씨 그림
다시 저자의 가설로 돌아가면 ‘말 안하면 모른다’이다. ‘말 안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고 ‘알아차려주면, 이렇게 해주어야지’라며 잔뜩 선물을 준비했다가도 ‘이래도 못 알아차릴 거야?’하며 점점 분노로 변해간다는 것. 상대을 향한 기지국 100개를 세운다해도 희망사항을 알아차리기는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완전한 소통을 꿈꾼다면 ‘내 맘을 읽어봐’를 ‘내 말을 들어봐’로 바꾸라는 조언. 또한, 사랑한다면 “사랑해”보다 “미안해”를 더 많이 하란다. 사과한다는건 사소한 일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니까.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에서도 연애의 건강을 감지할 수 있다. 오가는 말이 닭살스럽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그들끼리 통하는 농담에 더는 깔깔대지 않는다면 둘중 하나는 변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저자는 ‘라이트모티프’라는 말을 빌어와 설명한다. ‘라이트모티프’는 음악에서 자주 반복되는 마디절을 뜻하며 연인 사이에 빗대면 우연히 시작되어 계속 반복되는 농담을 일컫는다. 즉, 그들만의 농담에 어느 순간 “쓸 데 없는 농담 그만해” “재미 없어”라며 타박한다면 눈에 콩깍지가 떨어진 상태라는 것.

저자는 감정의 시제에서도 진실성의 일단을 엿본다. 현재형일 때만 진실이라고 단언한다. 흘러가는 감정을 과거형이나 미래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가당찮다는 것인데 가정법에 대해선 더더욱 불신이다. “내가 그때 그 사람만 안 만났으면 너를 좋아했을지도 몰라”라는 ‘~했더라면’의 언술은 신포도에 대한 괜한 심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닭살 농담’ 싫어지면 연애도 위험

‘연애의 언표’를 떠나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팁을 모아보면,

첫째, 여자는 자신이 예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점부터, 남자는 자신이 멋지다고 여기는 시점부터 인생이 달라진다. 그러한 생각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넓힌다. 단, 원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반갑지 않은 사람도 더 꼬인다는 것은 감수할 일. 둘째, 정말 다 갖춘 완벽한 ‘1%’와 ‘킹카·퀸카’ 소리를 듣는 ‘7%’를 넘어서면 오히려 100%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셋째, “웃는 얼굴이 예뻐요”와 같은 누구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칭찬은 상대방이 도로 호감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기술이다.

나는 왜 나쁜 남자만 만날까, 여자는 왜 남자의 전화를 기다릴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 멀리 있으면 왜 깨지는가…. 사랑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푼 독자에게 전하는 저자의 당부.

“연애로 생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자기 자신뿐, 이 책은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처방에 따라 약을 건네주기만 할 따름이다 … 그러니, 연애의 질병에 걸렸을 때는 스스로 처방을 내려 약을 타러 오기를.”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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