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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면 탐색 벗어난 선굵은 소설

등록 2006-08-04 19:11

권기태 장편 ‘파라다이스 가든’
경영권 승계 박진감 넘친 묘사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권기태(사진·40)씨의 두 권짜리 장편소설 〈파라다이스 가든〉(민음사)이 출간되었다.

〈파라다이스 가든〉은 모처럼 만나는 선 굵은 소설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한국 소설은 두드러지게 ‘여성적’ 편향을 보여 왔다. 80년대의 거대담론에 대한 반성과 비판 위에 자신을 구축해 온 90년대 이후로는 그런 경향이 한층 강화됐다. 이런 맥락에서 권기태씨의 소설은 현단계 한국 소설의 지배적 흐름에 대한 타자(他者)로서의 의미를 우선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성림건설’이라는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 다툼을 큰 얼개로 삼아 진행된다. 주인공인 김범오는 이복 형제가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본의 아니게 동원된다. 작가는 대규모 신주인 수권부 사채의 발행을 통한 경영권 장악 기도, 노쇠한 회장을 협박해서 얻어내는 의결권 위임 각서, 그리고 최첨단 생명공학의 산업화 모색까지 기업 내부의 논리와 움직임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도청과 몰래 카메라에 의한 감시, 깡패를 통한 물리적 위해는 물론 칼과 총기까지 동원하는 음모와 대결은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케일을 자랑한다.

소설의 제목과도 관련되는 다른 한 축은 낙원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다. ‘파라다이스 가든’은 김범오와 연인 강세연이 일종의 미니어처인 ‘상자정원(하코니와)’에 붙인 이름이다. 상자정원을 만든 이는 강원도 산속에 ‘도원수목원’을 가꾼 왕년의 아나키스트 김산 노인. 작가는 소설 속에서 서로 다른 동기와 목표를 수반하는 다양한 형태의 낙원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 본다. 김산과 김범오는 도연명 식의 ‘탈속’에서 낙원의 본질을 찾고, 경영권 다툼의 당사자인 원직수는 “타인의 낙오”를 낙원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성림건설의 원직수 일파가 도원수목원을 빼앗고자 깡패를 앞세워 쳐들어오는 결말부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성격의 낙원관이 벌이는 싸움을 대리하는 셈이다. 그 싸움에서 김범오는 결국 죽음을 맞는데, 그의 연인 강세연이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에필로그는 그 죽음이 결코 패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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