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 허브의 아지랑이
더르즈접드 엥흐벌드 외 지음. 난딩쩨쩨그·정용환 외 옮김. 모시는사람들 펴냄. 1만원
더르즈접드 엥흐벌드 외 지음. 난딩쩨쩨그·정용환 외 옮김. 모시는사람들 펴냄. 1만원
<샤르 허브의 아지랑이>(모시는사람들)는 몽골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단편소설 16편을 묶은 선집이다. 몽골현대문인협회를 창설한 나착도르즈(1906~1937)의 작품에서부터 70년대생 젊은 작가 아유르자나(36)의 2001년작 소설까지가 다채롭게 묶였다.
표제작(더르즈접드 엥흐벌드 지음)은 광활한 초원 위의 외딴 천막집(게르)에서 어린 아들과 단둘이 사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어느 날 모자의 게르에 낯선 남자가 찾아든다. 트럭이 고장나는 바람에 임시로 들른 이 남자와 여주인은 트럭이 수리될 때까지 며칠 동안 짧지만 절박한 사랑을 나눈다. 마지막 날 아침의 떠오르는 해를 혐오할 정도로 시간을 아껴 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잔인한 이별의 시간은 닥쳐 오고 모자는 다시 외롭고 적막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솔롱고>(로도이담바 지음)는 좀 더 어린 커플을 등장시킨다. 황순원의 <소나기>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소설에서, 엿새가 걸리는 먼 거리에서 결혼한 언니를 찾아온 소녀 솔롱고와 주인공 소년 ‘나’에게는 한 달의 기한이 주어진다. 최초의 호기심에 이은 호감의 형성, 우연을 가장한 접촉과 두 연인 사이의 연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소소한 사랑의 훼방꾼들…. ‘무지개’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소녀는 그야말로 무지개처럼 문득 나타났다가는 때가 되자 다시 떠나가고, 어린 연인들은 다만 순진한 약속을 교환할 따름이다: “나를 잊을 거야?” “아니, 언제까지 안 잊을게.”
아지랑이와 무지개는 초원의 단조로운 풍경에 변화와 활기를 주는 아련한 희망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근거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 대신 확실한 것은 몽골 초원의 선명한 색채와 형태.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은 너무 덥고, 아침에 밝고, 저녁에 어둡고, 거울같이 맑은 호수 근처에 도자기 같은 석회가 있고, 또한 높은 산, 넓은 초원, 맑은 강 등 선명한 것들이 수없이 많다.”(<솔롱고>)
<늙은 늑대가 울었다>(남닥 지음)는 초원의 또 다른 주민인 늑대의 생리와 움직임을 실감나게 묘사한, 그야말로 몽골적인 작품이다. 반면 최초의 사랑이 환멸과 배신으로 몸을 바꾸는 양상을 포착한 <불행한 사랑>(아유르자나 지음), 누드 모델과 화가 사이의 미묘한 심리 게임을 그린 <벌거벗은 초상화>(체렝톨 투멩바야르 지음) 등의 작품은 개혁 개방 이후 새롭게 ‘발견’된 소외와 욕망이라는 현대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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