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펴냄. 9800원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펴냄. 9800원
남쪽 삶에 완벽하게 ‘투항’해버린 중년의 간첩,
10년만에 갑자기 평양으로의 귀환명령이 떨어진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허우적거리는 고민의 실체는 ‘이념’이 아니라 ‘일상의 욕망’
10년만에 갑자기 평양으로의 귀환명령이 떨어진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허우적거리는 고민의 실체는 ‘이념’이 아니라 ‘일상의 욕망’
작가 김영하(38)씨가 3년 만의 새 장편소설 <빛의 제국>(문학동네)을 내놓았다.
2005년의 어느 날, 서울에서 암약하고 있던 간첩 김기영이 갑작스럽게 평양의 귀환 명령을 받는다. 그가 처음 남파된 것은 1984년,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권에 잠입해 활동하던 그는 대학 졸업 뒤 영화 수입업을 하며 남파된 간첩들에게 그럴듯한 신분을 위장해 주는 이른바 ‘포스트’로 구실한다. 그 사이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여자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춘기 딸을 둔 중년의 가장이 되는데, 1995년 이후 끊어졌던 선이 무려 10년 만에 복구되어 그를 호출한 것이다. 10년 동안 자신을 보낸 ‘저쪽’과는 무관한 존재로 살아 왔으며 내심 그 상태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랐던 기영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친 셈이다. 소설은 기영이 호출을 받은 날 오전 7시에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만 24시간을 모두 20개의 단락으로 끊어 긴박하게 진행된다.
<빛의 제국>은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지만, 그 문법은 여느 스파이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의 중심은 스파이의 업무 수행과 그에 수반된 모험이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파이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귀환 명령을 받는 시점의 기영은 이미 남쪽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해 있다. “배는 불룩 나오고 가슴은 빈약하며 팔에는 물살이 출렁대는, 남한의 평균적인 중년 남성이 되어가고 있는” 중으로, 그의 대학 여자후배 말마따나 “히레사케와 초밥, 하이네켄 맥주와 샘 페킨파나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며 “일요일 오전엔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 금요일 밤엔 홍대앞 바에서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다. 그것이 의심하는 눈들로부터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적응이자 남쪽 삶의 매력에 대한 ‘투항’이라는 데에 소설의 문제의식이 있다.
3년만에 내놓은 김영하 장편소설
이제 소설의 주제는 명령에 대한 복종의 의무와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자유의지 사이의 갈등으로 옮겨 간다. 명령의 배경 내지는 진위 여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지키는 길일지를 둘러싼 실존적 고민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기영은 자신의 옛 동료들과 접촉하고, 학생운동 시절 후배 여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종국에는 아내에게 동행을 요청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궁지에 몰린 그에게 등을 돌린다.
기영은 1963년에 태어나 1984년에 남파되어 2005년 현재 귀환 명령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42년 생애는 정확히 21년씩 북과 남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가 명령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갈등은 ‘북쪽의 21년 삶’과 ‘남쪽의 21년 삶’ 사이의 다툼이기도 하다. 그가 갈등 속에 허우적거리는 24시간은 만 하루에 축약된 42년 세월, 또는 민족 분단의 60년 세월이라 할 수도 있다. 출판사에서 낸 보도자료는 기영의 고민을 두고 ‘21세기판 <광장>’이라며 의미 부여하고 있는데, 기영이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 이념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에게서 벌써 이념은 일상의 욕망에 완패한 상태. 80년대의 남한이 2005년의 남한보다는 같은 80년대의 북한과 더 닮았다는 날카로운 통찰은 더 이상 이념의 어떠함이 결정적인 판단 근거로 구실하지 못하는 탈이념의 시대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 과잉’에 비현실적 설정도 일상은 비루하고 지루한 것이지만 그것과 영원히 작별해야 하는 순간에는 그 어떤 고귀한 가치보다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그놈의 일상이다. 기영은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에 빠져 지하철 승강장의 미세먼지와 차량용 윤활유 냄새, 취객의 술냄새와 젊고 천박한 여자의 향수 냄새까지를 흔연히 들이마신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기영은 “하루의 시작치곤 나무랄 것이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출근길에 오르며, 소설 말미에서는 그의 딸 현미의 시점을 빌려 “그녀에겐 평소와 다름없을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서술된다. 그러니까 소설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해, 개인사에 압축된 분단의 역사를 걸터듬고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소설이 끝날 무렵의 일상은 더 이상 전날 아침과는 같지 않다. 그 평범한 외양이 감추고 있는 불안과 갈등, 비밀과 모순 등이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한껏 불거져 나온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범상해 보이는 일상을 매혹과 회의의 이중적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소설의 제목은 낮과 밤이 공존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그림에서 왔다(같은 그림에서 모티브를 따 온 김연수씨와 정이현씨의, 같은 제목의 단편들도 있다). 소설 속에서는 기영에게 귀환을 명령하는 “페인트로 격렬하게 휘갈긴 붉은 글씨의 제국”과 그 제국으로의 귀환을 주저하며 두려워하는 기영의 마음 속 지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오래 전에 본 영화 <간첩 리철진>과 현실 속의 ‘간첩 깐수 사건’이 겹쳐서 떠올랐다. 분단과 대결의 현실이 엄연하지만, 간첩 파견과 스파이 행위와 같은 것은 어느새 낡아빠진 기억 속의 일들로 바뀌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주체사상을 ‘본토’에서 배운 기영이 남한 학생운동권의 주사파들에게 교육 받는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시사적이다. 그렇지만 80년대 대학 학생운동권에 잠입한 간첩이라는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그렇게 침투한 간첩 한 사람이 그 뒤에도 수백명의 간첩을 신분세탁해 남한 사회 곳곳으로 보냈다는 설정에 이르면 작가 쪽의 상상력 과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문학은 종종 현실을 앞서며 현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미리 드러내기도 한다. 지금도 이 땅 어딘가에는 기영 같은 인물이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영의 부인 장마리가 남자 두 명과 벌이는 ‘변태적 섹스 행각’이 소설 구성상 꼭 필요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은 길게 남는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oos.ch
‘상상력 과잉’에 비현실적 설정도 일상은 비루하고 지루한 것이지만 그것과 영원히 작별해야 하는 순간에는 그 어떤 고귀한 가치보다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그놈의 일상이다. 기영은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에 빠져 지하철 승강장의 미세먼지와 차량용 윤활유 냄새, 취객의 술냄새와 젊고 천박한 여자의 향수 냄새까지를 흔연히 들이마신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기영은 “하루의 시작치곤 나무랄 것이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출근길에 오르며, 소설 말미에서는 그의 딸 현미의 시점을 빌려 “그녀에겐 평소와 다름없을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서술된다. 그러니까 소설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해, 개인사에 압축된 분단의 역사를 걸터듬고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소설이 끝날 무렵의 일상은 더 이상 전날 아침과는 같지 않다. 그 평범한 외양이 감추고 있는 불안과 갈등, 비밀과 모순 등이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한껏 불거져 나온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범상해 보이는 일상을 매혹과 회의의 이중적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소설의 제목은 낮과 밤이 공존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그림에서 왔다(같은 그림에서 모티브를 따 온 김연수씨와 정이현씨의, 같은 제목의 단편들도 있다). 소설 속에서는 기영에게 귀환을 명령하는 “페인트로 격렬하게 휘갈긴 붉은 글씨의 제국”과 그 제국으로의 귀환을 주저하며 두려워하는 기영의 마음 속 지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오래 전에 본 영화 <간첩 리철진>과 현실 속의 ‘간첩 깐수 사건’이 겹쳐서 떠올랐다. 분단과 대결의 현실이 엄연하지만, 간첩 파견과 스파이 행위와 같은 것은 어느새 낡아빠진 기억 속의 일들로 바뀌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주체사상을 ‘본토’에서 배운 기영이 남한 학생운동권의 주사파들에게 교육 받는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시사적이다. 그렇지만 80년대 대학 학생운동권에 잠입한 간첩이라는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그렇게 침투한 간첩 한 사람이 그 뒤에도 수백명의 간첩을 신분세탁해 남한 사회 곳곳으로 보냈다는 설정에 이르면 작가 쪽의 상상력 과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문학은 종종 현실을 앞서며 현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미리 드러내기도 한다. 지금도 이 땅 어딘가에는 기영 같은 인물이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영의 부인 장마리가 남자 두 명과 벌이는 ‘변태적 섹스 행각’이 소설 구성상 꼭 필요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은 길게 남는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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