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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은 가도 작품은 남는 것’ 박인환 전집 처음 나왔다

등록 2006-08-10 20:54

현실비판·반제국주의 등 ‘낯선 면모’ 확인
한국전쟁 예견한듯 ‘1950년의 만가’ 눈길
타계 50년만에 시·산문 50여편 새로 발굴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의 시인 박인환의 시와 산문을 한데 모은 전집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책 수집가 문승묵(50)씨가 엮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이 그것이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에 태어나 서른 살인 56년 3월 20일에 타계한 시인. 올해는 그의 탄생 80돌이자 서거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의 대중적 인기와 그가 차지하는 문단사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박인환 전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86년에 〈박인환 전집〉(문학세계사)이라는 이름의 책이 나왔지만 시를 위주로 하고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선집’ 성격의 책이었다.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76)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한국대표시인 101인 선집 - 박인환〉(문학사상사, 2005) 등 박인환의 작품집으로 간행된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 80편과 산문 67편이 수습된 이번 전집에서는 기존의 책들에는 묶이지 않은 ‘발굴성’ 시 7편이 더해졌으며, 산문도 40여 편이 새 얼굴이다. 미확인 작품을 최소화한 명실상부한 ‘전집’이 출현하면서 박인환의 문학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평가가 비로소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박인환은 포즈와 엄살로 무장한 ‘감상적 댄디’ 정도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시 두 편이 그런 선입견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그의 현실 비판 및 반제국주의적 시편들을 근거로 그를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논의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미군정기에 씌어진 〈인천항〉과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등에서 들리는 반제국주의적 목소리, 그리고 〈자본가에게〉와 같은 시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은 박인환의 ‘낯선’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밤이 가까울수록/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정크의 불빛은 푸르며/마치 유니언잭이 날리던/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간다//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인천항〉 부분)

“나는 너희들의 마니페스토의 결함을 지적한다/그리고 모든 자본이 붕괴한 다음/태풍처럼 너희들을 휩쓸어갈/위험성이/태풍처럼 가까워진다는 것도”(시 〈자본가에게〉 부분)


새롭게 발굴되어 이번 전집에 처음으로 실린 시들 중에서는 〈1950년의 만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쟁이 터지기 불과 한 달여 전인 1950년 5월 16일치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불안한 언덕 위에로/나는 바람에 날려간다/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나는 죽어간다/(…)/지금은 망각의 시간/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고 하여 마치 미구에 닥쳐올 동란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하다.

한편 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는 전집 뒤에 붙인 해설에서 10여 편의 문학평론과 20편이 넘는 영화평론, 기타 연극 및 사진평론 분야 글의 분량과 수준에 주목하면서 평론가로서의 박인환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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