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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도덕한 위폐범 누명 벗겨주고파”

등록 2006-08-31 19:34수정 2006-09-01 14:40

해방 직후 인기 5위 정치지도자 박헌영 이은 조선공산당의 2인자
위폐사건으로 무기징역 중 총살 “고문·자백뿐인 의혹투성이 사건”
인터뷰/‘이관술: 1902-1950’ 쓴 안재성씨

이관술을 아시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들을 위해 해방 직후 ‘선구회’라는 이름의 우익성향 단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알려 드리고 싶다. 독립국가 건설을 앞두고 가장 인기있는 정치지도자를 묻는 조사였다. 1위는 33%의 여운형이 차지했고, 20%의 이승만이 2위에 올랐다. 3위가 17%의 김구, 4위는 15%의 박헌영, 5위가 13%의 이관술이었다. 나머지 2%는 김일성, 김규식 등에게 나뉘어 돌아갔다. 그러니까 이관술은 해방 직후 민중들 사이에 김구나 박헌영과 비슷한 정도로 유력한 지도자로 여겨졌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소설가 안재성(46)씨가 쓴 <이관술: 1902-1950>(사회평론)은 이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평전 형식에 담은 책이다.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를 나와 동덕여고 교사로 일하던 이관술은 1930년대부터 ‘반제동맹’과 ‘경성트로이카’ ‘경성콤그룹’ 등의 조직을 통해 항일운동을 펼쳐 온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해방 직후 재건된 조선공산당에서는 중앙검열위원에다 총무부장 겸 재정부장으로, 박헌영에 이어 사실상 2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46년에 터진 조선정판사 위폐 사건으로 체포된 그는 1심에서 받은 무기징역이 대법원에서 확정돼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헌병들에 의해 총살당하고 만다.

“당시 정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관술은 어차피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위폐사건이 터졌을 때 그가 주변의 권유대로 월북을 택했더라도, 결국 박헌영처럼 북에서도 숙청당하고 말았겠죠. 그러나 부도덕한 위폐사건의 주범이라는 식의 누명만은 벗겨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재성씨가 평전 <이관술>을 쓴 까닭이다. <이관술>을 쓰기까지는 앞선 이야기들이 있다. 이 책은 그가 2년 전에 내놓은 <경성 트로이카>의 후속편에 해당한다. 이관술을 비롯해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등 사회주의자들과, 이관술의 동덕여고 제자들이었던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이 연루된 지하 혁명조직의 이름이 ‘경성 트로이카’였다. 작가 안씨는 우연한 기회에 생존해 있는 관련자 이효정 할머니를, 그 아들인 조각가 박진환씨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것은 정말이지 예기치 못했던 수확이었습니다. 책에서만 보아 알고 있던 경성 트로이카가 저를 찾아온 셈이었죠. 소설미학의 완성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더 좋아하는 삼류 소설가를 말이죠.”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는 홍보 문구를 단 소설 형식의 역사물 <경성 트로이카>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관술>의 표지에는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1933년 1월에 반제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복역한 것을 필두로 세 차례에 걸쳐 9년여의 옥살이와 10년여의 도피생활을 하다가 비명에 간 혁명가의 삶을 적절히 요약하는 구절인 셈이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의문점 투성이입니다. 검찰은 고문에 의한 자백 말고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는데도,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공산당 기관지를 비롯해 진보적 신문들이 모두 폐간된 뒤 조선·동아일보는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서 사회주의자들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했죠. 무엇보다 남한에서 공산당을 괴멸시키려는 미군정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태백탄광지대에서 노동운동을 한 경험을 살린 장편소설 <파업>(1989) 등을 통해 80년대 노동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안씨는 1998년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가 굴삭기를 운전하는 한편 복숭아 농사와 축산업 등을 해 왔다. 그러나 80년 광주학살 당시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했다가 체포돼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극심한 목디스크가 발병해 지금은 모든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 한 차례 수술까지 했지만 큰 차도는 없다.

“건강이 좀 나아지면 여순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다룬 논픽션을 쓰려고 해요. 저에게는 소설이냐 아니냐 하는 게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80년대 노동문학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허구한 날 연애 얘기나 사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데 그치는 요즘 소설들이야말로 문학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작가들이 시야를 더 넓혀야 합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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