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피오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문이당 펴냄. 9800원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문이당 펴냄. 9800원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던 고아 여대생 ‘피오’가 어느날 갑자기 프랑스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피오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프랑스의 젊은 작가 마르탱 파주(31)가 2003년에 낸 세 번째 소설 <빨간 머리 피오>는 뜻하지 않게 스타가 된 주인공을 통해 예술계의 위선과 타락을 신랄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피오는 천재였던가? 아니, 피오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우리는 당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돈을 지불할 시간을 일주일간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편지가 그의 생계 수단이었다. 피오 스스로 ‘개새끼들에게 부과한 일종의 세금’(73쪽)이라 규정한 이 놀이의 대상자 중 한 사람이 비평가 앙브로즈 아베르콩브리였다. 아베르콩브리는 또 어떤 사람? “예술의 세계를 유엔으로 본다면, 그는 미국인 셈”(104쪽)이었다.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는 뜻. 피오의 책략을 알아챈 그의 평가: “난 자네의 아이디어가 돈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네.(…) 이건 정말 놀라운 사기인걸. 어떤 면에서는 예술 작품이랄 수도 있겠어.”(78쪽)
유력 인사들이 모일 자신의 장례식에서 아베르콩브리는 피오를 천재로 ‘선포’하고, 소설 속 한 인물은 피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그에게 죽음을 위한 비상 양식이었네. 그는 자네 덕에 지금 살아 있는 거지.”(196쪽) 살아 있는 피오를 통해 죽은 아베르콩브리가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예술계의 치부는 아베르콩브리의 사후에 대한 야욕만은 아니다. 난해한 언어로 포장해 내는 기술을 가졌을 뿐인 전위 예술가, 실제로 본 적도 없는 피오의 그림에 대해 공격적인 리뷰를 발표한 비평가, 피오가 참석하지도 않은 파티에 참석한 것처럼 쓴 신문 기사 등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면서 소설은 예술계 전체에 대한 풍자로 이어진다.
“자신에게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자신이 하는 말에 미묘하게도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신선한 열정을 간직했던 것이다”(53쪽), “인색함은 지갑의 신성한 겸손”(194쪽), “정직함이란 살아 있을 때 실천하기엔 너무 위험한 가치였다”(202쪽)처럼 반어적 재치가 번득이는 문장들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소설의 결말? “자신이 믿지도 않는 인공 낙원에 속하게 된”(257쪽) 주인공은 거창하게 마련된 자신의 전시회장을 뛰쳐나와 센 강에 몸을 던진다. 참고로, 피오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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