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원 들고 상경해 노숙한 적도 소외되고 세파 휘둘린 이들 친숙
단편 ‘또디’와 달리 이야기 치중 다음작은 동화…시나리오 준비중
단편 ‘또디’와 달리 이야기 치중 다음작은 동화…시나리오 준비중
인터뷰/첫 장편만화 ‘달빛구두’ 낸 정연식씨
“난 이야기꾼이예요. 그래서 그림 못그리는 것보다 이야기를 제대로 못푸는 게 더 창피해요. 이야기를 길게 풀어야 하는 장편만화는 처음이라, 자료조사하고 스토리 쌓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어요.”
스스로를 ‘그림꾼’이 아닌 ‘이야기꾼’으로 정의하는 만화가 정연식(38)의 첫 장편만화 <달빛구두>(휴머니스트 펴냄)가 세 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달빛구두>는 그의 대표작인 생활만화 <또디>의 후속작으로, 2005년 1월부터 2006년 8월까지 ‘미디어 다음’에 연재됐던 인터넷 만화다.
인터뷰 당일이었던 5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해받았다는 정씨는 “<또디>가 10여칸짜리 단편만화이자 오프라인 만화였던 반면, <달빛구두>는 장편만화이면서 온라인 만화였기 때문에 성격이 많이 다른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면 만화의 경우 분량이나 규격, 소재 제약이 많았지만 온라인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하고 그릴 수 있어 좋았다”는 것.
여러가지 ‘제약’들이 사라지면서 <달빛구두>의 이야기는 <또디>에 비해 방대해졌고, 디테일해졌다. 각 권마다 13~26개의 에피소드로 끊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길이’에서 오는 부담감은 다른 장편만화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세 사람의 딸 이야기가 40년에 걸쳐 굽이굽이 흐른다. 또 초반 에피소드에서 슬쩍 등장했던 인물이나 사건이 뒷부분에서 중요한 ‘반전’을 이끌어내는 등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기도 하다.
그는 “단편의 경우, 그림이 빽빽하고 글자가 많아지면 잘 읽히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길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치밀하게 구성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이번엔 긴 이야기의 ‘틈’을 메우기 위해 디테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또디>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였다. 한 컷 안에 사진과 그림을 섞는가 하면, 배경을 아웃포커싱한 채 인물만 부각시키는 등 낯설지만 신선한 시도들이 이어진 것이다. 정씨는 이를 두고 “그림 그리기 귀찮아서 대충 때우려고 잔재주를 좀 부렸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진을 찍느라 만화의 배경이 되는 부산을 숱하게 오갔다는 걸 보면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달빛구두>는 장·단편, 오프라인과 온라인이라는 차이 이외에도 명랑쾌활했던 <또디>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서정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달빛구두>는 이렇게 여러 면에서 <또디>와 다른 작품이지만 단 한 가지, 가난한 무명작가 가족 등의 일상을 다뤘던 <또디>의 ‘서민성’만큼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달빛구두>의 주요 인물들이 학생운동 이력 때문에 번번이 회사에서 해고되는 가장, 폭력배 생활을 끝내고 작은 빵집 주인이 된 남자,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접은 가난한 주부 등일 뿐더러,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도 밑바닥 동네 사람들의 삶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정씨는 “부산에서 달랑 15만원 가지고 상경해 여관비를 아끼려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한 적도 있고, 아내한테 ‘풀빵 장사나 하자,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으니까 풀빵 봉투는 예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살아왔다”며 “그런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멋있고 자기 세계가 확실하게 있는 사람들보다는 뒤처지고 소외되고 세파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기가 정서적으로 더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정씨의 다음 작품은 만화가 아니라 동화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동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동전이야기>인데, 11월께 출간될 예정이다. 단편영화 한편도 이미 시나리오 초고가 나와있다니, 그의 오랜 꿈도 실현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김태형 기가 xogud555@hani.co.kr
<달빛구두>는 장·단편, 오프라인과 온라인이라는 차이 이외에도 명랑쾌활했던 <또디>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서정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달빛구두>는 이렇게 여러 면에서 <또디>와 다른 작품이지만 단 한 가지, 가난한 무명작가 가족 등의 일상을 다뤘던 <또디>의 ‘서민성’만큼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달빛구두>의 주요 인물들이 학생운동 이력 때문에 번번이 회사에서 해고되는 가장, 폭력배 생활을 끝내고 작은 빵집 주인이 된 남자,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접은 가난한 주부 등일 뿐더러,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도 밑바닥 동네 사람들의 삶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정씨는 “부산에서 달랑 15만원 가지고 상경해 여관비를 아끼려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한 적도 있고, 아내한테 ‘풀빵 장사나 하자,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으니까 풀빵 봉투는 예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살아왔다”며 “그런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멋있고 자기 세계가 확실하게 있는 사람들보다는 뒤처지고 소외되고 세파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기가 정서적으로 더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정씨의 다음 작품은 만화가 아니라 동화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동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동전이야기>인데, 11월께 출간될 예정이다. 단편영화 한편도 이미 시나리오 초고가 나와있다니, 그의 오랜 꿈도 실현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김태형 기가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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