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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젝이 복권시킨 레닌

등록 2006-09-07 19:55수정 2006-09-08 15:03

혁명이 다가온다<br>
슬라보이 지젝 지음. 이서원 옮김. 길 펴냄. 1만8000원
혁명이 다가온다
슬라보이 지젝 지음. 이서원 옮김. 길 펴냄. 1만8000원
이 시대 대표적 실천적 지성인 레닌 통해 급진적 실천 제시
“우리가 가야 할 제3의 길은 의회정치와 신사회운동 사이”
<혁명이 다가온다>(길 펴냄)는 레닌에 대한 지젝의 이야기다. 어떤 면에서 그 만남은 기묘하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멸종해가는 것을 대표한다. 스탈린의 악몽과 함께 레닌의 혁명도 진지한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반면 슬라보이 지젝은 21세기 지성계의 새로움을 상징한다. 라캉을 통해 마르크스를 재해석하고 정신분석을 빌어 정치경제학을 논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레닌은 잊혀진 전통이고, 지젝은 주목받는 첨단이다. 지젝 스스로 책에 썼듯이 “레닌을 재조명하겠다는 (나의) 아이디어에 대해 사람들이 비아냥어린 웃음을 터뜨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젝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아주 엉뚱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을 계기삼아 톺아보면 지젝은 레닌을 많이 닮았다. 지젝은 칸트-피히테-셸링-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복원에 관심이 깊고, 그 사유의 상당 부분을 마르크스에 기대고 있는 좌파 지식인이다. ‘실천하는 이론가’를 지향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지젝은 유고연방 해체 이후인 1990년, 고국인 슬로베니아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유럽의 주변부에서 ‘유럽적인 것’의 중심을 전복하려 애쓴다는 점에서도 지젝과 레닌은 교차하고 겹친다.

소련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국가 곳곳에 서 있던 레닌 동상들은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핀란드 역에 서 있는 레닌 동상은 아직 건재하다. 슬라보이 지젝이 복권시킨 레닌은 절망적 상황에서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끝내 이를 실현시킨 실천가로서의 레닌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소련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국가 곳곳에 서 있던 레닌 동상들은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핀란드 역에 서 있는 레닌 동상은 아직 건재하다. 슬라보이 지젝이 복권시킨 레닌은 절망적 상황에서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끝내 이를 실현시킨 실천가로서의 레닌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만 유럽의 68세대 지식인 대부분이 스탈린을 비판하고 그 원죄를 레닌에게서 찾은 뒤 마르크스의 재해석과 부활에 매달렸던 데 비해, 지젝이 새삼 급진적 실천의 가능성을 레닌으로부터 발굴해낸 일은 여전히 독특하고 유별나다.

이 책은 레닌의 일생과 저작을 따라가는 ‘레닌의 이야기’는 아니다. 레닌의 여러 저술과 삶이 등장하긴 하지만, 지젝은 그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할애해 수많은 서구 지식인들을 등장시켜 자신의 사유 속으로 포섭했다. 지젝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레닌의 존재가 아니라 지젝 자신의 존재다. 이 책은 “혁명의 역사를 (레닌이라는) 고독한 천재의 이야기로 변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젝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허상을 전복하는 혁명적 정치의 기획이다.

이 책에서 지젝이 ‘복권’시킨 레닌은 절망적 상황에서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끝내 이를 실현시킨 실천가로서의 레닌이다.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닌이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그 안에 여전히 유토피아적 불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레닌의 유토피아적 불꽃을 들어 지젝이 집중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신사회운동의 폐해다. 지젝은 국제공산주의 대열에서 이탈해 애국주의 노선을 따랐던 20세기 초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과 오늘날의 신사회운동을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다. 환경운동, 반인종차별운동, 여성운동, 문화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신사회운동을 향해 “어느 정도 효율성은 있지만 엄격하게 제한된 목표나 마케팅 전략을 가진, 조직화된 주변적 소동”이라고 일갈했다.

특히 이들 신사회운동 및 해체주의 전략이 ‘타자를 억압하는 메카니즘’에 주목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의 전략을 지젝은 이렇게 축약했다. “가능한 많이 급진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도록!” 지젝이 보기에 억압된 ‘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권리에 주목하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독자적 경험을 자신의 비난받을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동원할 수 있는 보수주의적 정치태도”라고 비판했다. 이 대목은 최근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식민주의 및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영감을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젝이 공들여 말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허상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포섭되지 않는 것들을 배제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민주적이지 않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생산관계를 포함하는 국가권력의 형식이다.” 억압된 타자를 관용하여 민주주의의 장으로 불러들여도 여전히 ‘배제된’ 주변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통찰이 여기에 담겨 있다.


지젝은 “우리가 찾아야할 진정한 제3의 길은 제도화된 의회정치와 신사회운동들 사이의 길”이라고 썼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세계적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고, 실은 세계적 자본주의의 토대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 “경제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정치적 계급투쟁”의 문제를 제대로 대면하는 것이다.

결론만 보자면 단순한 ‘레닌의 재현’이라 평가하기 쉽지만, 21세기의 새로운 급진정치를 말하는 이 철학자의 사유는 복잡하다. 여러 영화, 문학, 음악, 드라마 등을 섭렵하며 철학, 정신분석학, 정치학을 넘나드는 그의 글솜씨가 머리를 식혀준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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