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논리’부터 ‘21세기 아침의 사색’까지 12권 나와
리영희(77) 선생의 50년 저작활동을 결산하는 〈리영희 저작집〉(한길사)이 나왔다.
1970년대에 나온 〈전환시대의 논리〉(74년·창작과비평)와 〈우상과 이성〉(77·한길사), 80년대의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84·동광) 〈분단을 넘어서〉(84·한길사) 〈역설의 변증: 통일과 전후세대와 나〉(87·두레) 〈역정〉(88·창작과비평), 90년대의 〈自由人, 자유인〉(90·범우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94·두레) 〈스핑크스의 코〉(98·까치) 〈반세기의 신화: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99·삼인), 그리고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2005·한길사) 〈21세기 아침의 사색〉(2006·한길사) 등 12권이다.
〈10억인과의 대화〉, 〈중국백서〉 등 번역서와 편역·주해서들은 저자와의 협의를 거쳐 빠졌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동굴 속의 독백〉 같은 단행본들도 빠졌으나, 한길사 쪽은 거기에 수록된 글들은 저작집에 들어 있는 글들과 중복되는 것들이어서 “사실상 전집이라 해도 좋다”고 밝혔다.
냉철한 글·행동하는 지식인
“난 휴머니스트이자 낙관주의자
한국 최대 우상은 반공·숭미”
지난해에 나온 〈대화〉 이후 단편적으로 발표되었거나 (과거에 쓴 것들 중)공개되지 않은 원고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묶은 마지막 제12권 〈21세기 아침의 사색〉 중에서, 배우 오지혜와의 대화 속에 선생은 말한다. “난 휴머니스트입니다. 인도주의자 그리고 평화주의자이고, 덧붙인다면 우상파괴자!” 그렇다. 우상파괴자야말로 리영희를 떠올릴 때 이 시대가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일 것이다.
7일 전화에서 선생에게 ‘우리 시대 한국 최대의 우상’이 뭔지 물었다. ‘좌반신 신경마비’를 앓는 고령임에도 명료한 답이 즉각 돌아왔다. “통치권력배들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판단을 왜곡하는 반공주의, 그리고 미국을 절대화하는 숭미주의.”, “억지스런 질문이지만”을 전제로 우상파괴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보는지 굳이 비율로 짚어달라고 하자, “50% 정도는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루는 사안들은 무겁고 비극적이지만 선생은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다. “비판조차 낙관적 신념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상을 좋게 만들어갈 수 있는데도 그런 우상숭배와 거짓으로 국민의식을 마비시켜 망치는 각종 집단들의 존재를 파괴해갈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비판도 가능한 것이다.” 그가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직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하면서 베트남전쟁과 중국혁명의 진실을 캐는 데 열중한 것도 정치, 종교, 철학, 사상, 사회현실 등의 비판을 통한 우상파괴 활동의 일환이었다.
“좌반신 신경마비 불행하지만
애증과 갈등 넘어 긴 역사 관조
평안한 마무리 기회삼아 행복”
‘50년간의 연구와 집필생활을 마감하면서’ 지난 7월에 쓴 제12권 머리말(아마 공식적으로 발표된 마지막 글일 것이다. 선생은 앞으로도 구술을 포함한 공적인·대사회적인 연구나 집필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한국과 한반도에는,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과 세계에는 새로운 희망과 공포가 엇갈리고 있다. …남북민족의 한결같은 평화와 통일의 싹을 무자비하게 뭉개버리려는 제국주의 미국의 흉계는 날로 교활해지고, 그들에 동조하는 국내 기득권세력의 지배욕은 날로 노골화하고 있다. 이들의 본성과 음모를 밝힘으로써…” 50년간은 그가 57년 초 29살 나이에 만 7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뒤 합동통신사 공채시험에 합격한 이래 기자,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약해온 지금까지의 세월을 말한다. ‘동북아의 새로운 희망과 공포’와 관련해, 국내에서 미-일 동맹 강화 등 미국과 일본의 도발적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일 때마다 묘하게도 중국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동시에 주류언론들 지면을 장식하는 현실에 대한 설명을 구했다. “미국이 장차 동북아에서 강대해지는 중국과, 과거 소련에 대해서처럼 전쟁을 하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으로선 그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필요하고 남한은 거기에 ‘0.5 군사국가’로 덧붙이려 한다. 특히 강대국으로 행세했던 일본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지극히 강하다. 지금의 이런 동북아 상황은 마치 1930년대 초와 아주 흡사하다. 그에 비하면 중국의 동북공정 따위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물론 우리로선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만 중국 동북공정은 전쟁을 위한 국가사업이 아니다. 미·일 동맹세력은 중국의 위협을 미·일의 그것과 동격화함으로써 자신들의 곤란한 처지를 상쇄시키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는 71년 그와 서울 무교동 막걸리집에서 마주앉아 나눈 한 일본인 유명교수의 얘기가 나온다. 교수는 부관페리(식민지시대의 관부연락선) 재개통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재침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는 바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활동이 본격화된다면 그것은 일본 쪽에서 그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쪽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이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로부터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은 해상 및 공군자위대와 미 해·공군의 군사적 일체화를 서두르면서 이를 방해하는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일 동맹군은 어디로 튈까? 작통권 환수에 반대하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환영하는 세력은 35년 전 “오히려 한국 쪽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이려” 하는 세력에 대해 우려했던 일본인 교수의 얘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심스런 낙관주의자’ 리 선생은 이 땅의 통일이나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다만 젊은이들에 대해 “미국사회, 미국적 가치를 너무 모방하지 말고, 물질보다 인간을, 인간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존중해주기를” 당부했다. “이젠 하늘이 50년간 써온, 애증과 갈등을 부르는 내 글들을 그만 쓰고, 편안하게 살라고 하는 것 같다. 좌반신 신경마비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오히려 이젠 영예스럽게 마무리를 하고 평안 가운데 반성하고, 사회에 개입하기보다는 관조하면서 역사를 더 길게 보는 기회를 하늘이 주시는 거다. 불행을 오히려 복으로 여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난 휴머니스트이자 낙관주의자
한국 최대 우상은 반공·숭미”
책 〈대화〉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던 2004년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 있는 자택 근처 수리산 산책길에서.(맨 위) 아래 왼쪽부터 14살 중학교 3년생 때와 한국전쟁 휴전 직후 정보장교 시절(‘리영희 저작집’ 중에서), 1989년 〈한겨레신문〉 창간기념 북한취재기자단 방북기획 사건 재판정에 선 모습(한겨레 자료사진).
애증과 갈등 넘어 긴 역사 관조
평안한 마무리 기회삼아 행복”
‘50년간의 연구와 집필생활을 마감하면서’ 지난 7월에 쓴 제12권 머리말(아마 공식적으로 발표된 마지막 글일 것이다. 선생은 앞으로도 구술을 포함한 공적인·대사회적인 연구나 집필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한국과 한반도에는,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과 세계에는 새로운 희망과 공포가 엇갈리고 있다. …남북민족의 한결같은 평화와 통일의 싹을 무자비하게 뭉개버리려는 제국주의 미국의 흉계는 날로 교활해지고, 그들에 동조하는 국내 기득권세력의 지배욕은 날로 노골화하고 있다. 이들의 본성과 음모를 밝힘으로써…” 50년간은 그가 57년 초 29살 나이에 만 7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뒤 합동통신사 공채시험에 합격한 이래 기자,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약해온 지금까지의 세월을 말한다. ‘동북아의 새로운 희망과 공포’와 관련해, 국내에서 미-일 동맹 강화 등 미국과 일본의 도발적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일 때마다 묘하게도 중국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동시에 주류언론들 지면을 장식하는 현실에 대한 설명을 구했다. “미국이 장차 동북아에서 강대해지는 중국과, 과거 소련에 대해서처럼 전쟁을 하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으로선 그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필요하고 남한은 거기에 ‘0.5 군사국가’로 덧붙이려 한다. 특히 강대국으로 행세했던 일본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지극히 강하다. 지금의 이런 동북아 상황은 마치 1930년대 초와 아주 흡사하다. 그에 비하면 중국의 동북공정 따위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물론 우리로선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만 중국 동북공정은 전쟁을 위한 국가사업이 아니다. 미·일 동맹세력은 중국의 위협을 미·일의 그것과 동격화함으로써 자신들의 곤란한 처지를 상쇄시키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는 71년 그와 서울 무교동 막걸리집에서 마주앉아 나눈 한 일본인 유명교수의 얘기가 나온다. 교수는 부관페리(식민지시대의 관부연락선) 재개통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재침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는 바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활동이 본격화된다면 그것은 일본 쪽에서 그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쪽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이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로부터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은 해상 및 공군자위대와 미 해·공군의 군사적 일체화를 서두르면서 이를 방해하는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일 동맹군은 어디로 튈까? 작통권 환수에 반대하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환영하는 세력은 35년 전 “오히려 한국 쪽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이려” 하는 세력에 대해 우려했던 일본인 교수의 얘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심스런 낙관주의자’ 리 선생은 이 땅의 통일이나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다만 젊은이들에 대해 “미국사회, 미국적 가치를 너무 모방하지 말고, 물질보다 인간을, 인간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존중해주기를” 당부했다. “이젠 하늘이 50년간 써온, 애증과 갈등을 부르는 내 글들을 그만 쓰고, 편안하게 살라고 하는 것 같다. 좌반신 신경마비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오히려 이젠 영예스럽게 마무리를 하고 평안 가운데 반성하고, 사회에 개입하기보다는 관조하면서 역사를 더 길게 보는 기회를 하늘이 주시는 거다. 불행을 오히려 복으로 여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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