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배낭여행 간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 보고 눈물 펑펑
그 감동 소개하다 평론가로 “입문자·제작자 모두 도움되길”
그 감동 소개하다 평론가로 “입문자·제작자 모두 도움되길”
인터뷰/<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낸 원종원 교수
최근 발간된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책이다. 650쪽에 가까운 두께와 육중한 하드커버 장정이 보는 이를 슬쩍 주눅들게 하지만 속을 채운 이야기들은 뮤지컬 문외한이라도 술술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화제를 일으켰던 뮤지컬 48편의 작품 소개와 현지 반응, 작품을 둘러싼 문화적 배경, 숨겨진 에피소드 등이 담겨있는 이 책에는 전문적 지식보다 지은이의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먼저 다가온다. 열혈 관객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된 원종원(37·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이력이 만들어낸 이 책의 독특한 분위기다.
“해외여행이 자율화된 1988년에 배낭여행을 가서 생전 처음 뮤지컬이라는 걸 봤어요. 거기 친구가 <오페라의 유령> 표를 선물해준 덕이었죠. 옆의 영국인 부인이 손수건을 줄 만큼 펑펑 울면서 감동을 받았어요. 모든 출발은 거기서부터였죠.” <아가씨와 건달들> 등 가뭄에 콩나듯 뮤지컬 공연이 있기는 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무대는 뮤지컬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항상 좋은 작품과 관객들로 북적이는 웨스트엔드가 너무 부러웠죠. 당시 한국에는 배우, 작곡가같은 창조적 인력이 부족하고 공연장도 없고, 그러니까 당연히 관객도 없었어요. 제가 배우나 작곡가가 되기는 무리고, 그렇다고 극장을 지을 만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나를 포함해 1년 내내 극장을 메울 뮤지컬 관객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그때 하게 된 거죠. 이 책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겁니다.”
그때 피시통신의 배낭여행 동호회에 해외 뮤지컬을 소개하는 작업으로 시작한 것이 뮤지컬 칼럼니스트, 평론가로 그를 나아가게 했다. 그 사이 한국에도 뮤지컬 붐이 일었다.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볼 때만 해도 죽기 전에 한국에서 이걸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반 정도가 이미 현지팀 초청이나 라이선스로 공연됐으니 격세지감을 가질 만하다.
이처럼 시장은 팽창됐지만 뮤지컬 산업이 성장했는가에는 물음표를 단다. “뮤지컬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갖춰진 거죠. 하지만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는 체계화된 정책이 필요합니다. 책에 쓴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의 독일 보쿰시 공연이 바람직한 한 예죠. 시 정부에서 전용극장 운영을 민간에 위탁해 이 작품을 상시공연하면서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자원으로 키웠으니까요.”
수록작이 모두 해외작품이라 그를 ‘브로드웨이 뮤지컬 전문가’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토착 뮤지컬이다. 이를테면 <맘마미아> 등 기존의 콘텐츠를 활용해 성공한 뮤지컬에서 배워야 할 점과 엄청난 돈을 들였으나 실패한 <선셋대로>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 등을 기록한 것은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창작 뮤지컬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잠재성은 매우 큽니다. 외국 팝음악을 듣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대중음악도 발전했고, 또 해외 뮤지컬이 점점 더 활발하게 끌어오는 영화 역시 많이 성장했죠. 뮤지컬계 안에서만 새로운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런 타 장르와의 적극적인 결합이야말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큰 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사물놀이와 <스톰프>식 퍼포먼스를 결합한 <난타>나 <점프>의 성공을 눈여겨 볼 만하며 최근 비보이 공연을 적극적으로 무대에 끌어오는 현상도 흥미롭다고 한다. 이른 바 돈되는 해외뮤지컬 수입에 있어서도 한국화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 “할리우드 영화가 쉽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전세계 관객들을 끌어들인다면 뮤지컬은 지역색이나 문화가 많이 작용을 해요. 예를 들어 <아이다>에서 흑인 여주인공과 백인 남자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것 만으로 서구에서는 여러가지 함의를 보여줄 수 있지만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이 것을 어떻게 한국적으로 이해시킬까를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이 책이 뮤지컬 입문자뿐 아니라 제작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영어나 영미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해외 작품을 고를 때 비주얼이나 음악에만 치중하는 경향도 있다고 봐요. 이 책이 작품의 내적맥락을 이해하고 한국화시키는 작업에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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