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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화보] 허물어지고 파헤쳐진 ‘광개토대왕의 땅’

등록 2006-09-19 19:28

<b>‘환도산성’ 흔적만</b> 고구려 제10대 산상왕(재위 197∼227)이 즉위 이듬해에 처음으로 쌓았으며 고구려가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왕이 적의 침입을 피해 거처하던 행궁으로 쓰였다. 지난 2004년 이곳에서 대규모 왕궁 관련 유적이 발견돼 건물 기초부와 원통형 기와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사진 가운데 길고 가늘게 이어진 부분이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이다.
‘환도산성’ 흔적만 고구려 제10대 산상왕(재위 197∼227)이 즉위 이듬해에 처음으로 쌓았으며 고구려가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왕이 적의 침입을 피해 거처하던 행궁으로 쓰였다. 지난 2004년 이곳에서 대규모 왕궁 관련 유적이 발견돼 건물 기초부와 원통형 기와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사진 가운데 길고 가늘게 이어진 부분이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이다.
국내성·벽화 행렬도…
일 고고학자 1930년대 찍은
문화유산 120여장 첫 공개
성균관대박물관, 석달간 전시

<b>사라진 ‘국내성’</b> 1935~40년 사이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현 일대에서 찍은 고구려 국내성의 모습(위). 국내성은 네모꼴의 평지성으로 전체 둘레가 2686m에 이른다. 가운데 솟은 북서쪽 ‘각루’와 길게 이어진 성벽들이 당시 온전했던 성곽 보존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4월 같은 위치·각도에서 찍은 사진(아래)은 성벽과 망루를 훼손하고,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이다.
사라진 ‘국내성’ 1935~40년 사이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현 일대에서 찍은 고구려 국내성의 모습(위). 국내성은 네모꼴의 평지성으로 전체 둘레가 2686m에 이른다. 가운데 솟은 북서쪽 ‘각루’와 길게 이어진 성벽들이 당시 온전했던 성곽 보존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4월 같은 위치·각도에서 찍은 사진(아래)은 성벽과 망루를 훼손하고,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이다.

‘집안’ 고구려 유적 어제와 오늘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국내성으로 추정되는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일대 유적의 1935~1940년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120여장이 처음 공개됐다. 일제 시대 때 국내성 모습과, 지금은 훼손돼 모사도만 남은 통구 12호 벽화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료들이다.

성균관대가 19일 공개한 이들 사진은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 교수와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을 지낸 고고학자 후지타 료사쿠(1892~1960)가 1935~40년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 일대의 역사 유적을 답사해 찍은 사진 1845점 가운데 일부다. 성균관대쪽은 “광복 직후 후지타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지인에게 남긴 사진들을 1953년 입수한 뒤 보관해왔다”고 밝혔다.

공개된 사진들은 국내성 성벽이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상당한 높이로 남아있었고, 모서리의 망루도 보존돼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훼손돼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통구12호 무덤의 ‘행렬도’ 벽화를, 1937년 발굴 직후 찍은 생생한 현장 사진도 주목된다. 지금까지 행렬도는 1980년 북한에서 펴낸 <조선유적유물도감>에 실린 모사도만 전해져, 훼손 전의 선명한 벽화 모습을 담은 유일한 사진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사진들 속에는 오회분 5호묘 발굴 현장 등 이제껏 국내외의 다른 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한편 성균관대 박물관은 22일부터 석달 동안 기획전 ‘집안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을 열어, 이 사진들과 지난 4월 김대식 박물관 학예실장 등이 후지타의 사진과 같은 위치·각도에서 찍은 현지 사진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김 실장은 “후지타의 사진은 고구려 유적 발견 직후 촬영된 것들이 많아 당시 유적 상황을 생생히 보여준다”며 “일본인들이 우리 문화유산의 조사와 보존에 노력한 점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송재소 박물관장(한문학)은 이번 전시회의 의미에 대해 “중국의 억지스런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볼 수 있다”며 “집안 일대의 고구려 유적은 누가 뭐래도 우리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이번 기회에 널리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성균관대 박물관 제공

<b>시녀들 거느리고 어디 가고 있었을까</b> 지금까지 모사도만 전해졌던 통구12호분 ‘행렬도’ 벽화(부분). 이번에 처음 공개된 발굴 당시 사진이다. 풍속도 중심의 초기 고구려 벽화 양식을 잘 보여주는 벽화로 굽은 우산을 든 시녀와 검은 그릇을 든 시녀 2명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시녀들 거느리고 어디 가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모사도만 전해졌던 통구12호분 ‘행렬도’ 벽화(부분). 이번에 처음 공개된 발굴 당시 사진이다. 풍속도 중심의 초기 고구려 벽화 양식을 잘 보여주는 벽화로 굽은 우산을 든 시녀와 검은 그릇을 든 시녀 2명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b>유리에 갇힌 ‘광개토대왕비’</b>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414년 세운 높이 5.34m, 각 면 너비 1.의  선왕 공덕비로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석이다. 비문 1802자는 당대 삼국의 정세와 대 일본 관계를 알려 주는 소중한 금석문 자료다. 중국은 87년 현 비각을 세운 데 이어 2003년 유리판으로 비석 주위를 완전히 막았다.
유리에 갇힌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414년 세운 높이 5.34m, 각 면 너비 1.의 선왕 공덕비로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석이다. 비문 1802자는 당대 삼국의 정세와 대 일본 관계를 알려 주는 소중한 금석문 자료다. 중국은 87년 현 비각을 세운 데 이어 2003년 유리판으로 비석 주위를 완전히 막았다.

<b>‘장군총’은 서서히 내려앉고…</b>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시대 돌무덤 ‘장군총’은 무덤 주인을 놓고 광개토대왕, 장수왕 설이 엇갈린다. 뒤쪽에 보이는 서쪽 모서리는 지반 침하로 현재 내려앉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무덤 위의 나무들은 1980년대 모두 뽑혔다.
‘장군총’은 서서히 내려앉고…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시대 돌무덤 ‘장군총’은 무덤 주인을 놓고 광개토대왕, 장수왕 설이 엇갈린다. 뒤쪽에 보이는 서쪽 모서리는 지반 침하로 현재 내려앉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무덤 위의 나무들은 1980년대 모두 뽑혔다.

<b>왕릉급 무덤…주인은 누구?</b> 태왕릉은 2004년 ‘호태왕’ 명문이 새겨진 청동 방울이 나와, 광개토대왕릉 설이 우세해진 왕릉급 무덤이다. 양쪽에 두 개의 큰 돌을 반듯이 세우는 등 돌무지를 가지런히 한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왕릉급 무덤…주인은 누구? 태왕릉은 2004년 ‘호태왕’ 명문이 새겨진 청동 방울이 나와, 광개토대왕릉 설이 우세해진 왕릉급 무덤이다. 양쪽에 두 개의 큰 돌을 반듯이 세우는 등 돌무지를 가지런히 한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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