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도울 선생님, 정갈한 글쓰기할 세상이 왔나요?

등록 2006-09-21 18:54수정 2006-09-22 13:42

18.0˚가 독자에게

도올은 “문장을 시작하면 글로 써달라고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을 쳐서 귀찮을 지경”이라고 했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되면 괴롭다. 머릿속은 할 말로 꽉 차 있는데 도무지 무슨 말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이번 호 커버스토리처럼 글 잘 쓰도록 도와주겠다는 책이 시중에 왜 수백 종이나 나와 있겠는가? 그러나 도올이 누군가? “나는 항상 글이 잘 써진다.”

평행봉 위에 날렵하게 올라 앉은 그의 모습은 강호의 호쾌한 무협고수를 연상시킨다. 환갑 가까운 나이에 평행봉 스윙이라니. 오래 전에 읽은 그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표지에 나온 도올과는 뭔가 차원이 달라보인다. 그 책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이조면 어떻고, 오얏(李)조면 어떻고, 살구조면 어떻고, 개조면 어떻고, 좆대가리조면 어떤가? 그까짓 이조, 이씨들이 다 해쳐먹고 망쳐먹은 이조라서 이조라 하면 어떤가?”(물론 이 글은 조선조를 폄훼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데서나 뽑아본 건데, 그야말로 도올답지 않은가!

이제 그 특유의 ‘잘난 척’과 ‘오버’, 그리고 ‘공격성’도 많이 없어졌단다. “내가 지금 내 책을 봐도 과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수용해준 사회에 감사해요.” 놀랍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하다. “사실 내가 그렇게 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를 까대고 뭉개려는 인간들에 대해 ‘너희들이 그래도, 도올은 사라질 수 없다’는 생명력을 보여주려는 과시이자 생명력의 표출이었어요. 이젠 정갈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올을 만든 것은 무능하고도 배타적인 ‘주류 기득층’에 대한 거부와 경멸, 야유, 그리고 오기와 자신감에 찬 투지, 바로 그 생명력이었다. 정갈한 책쓰기야 환영하지만, 세상을 뒤엎기도 전에 도올이기를 그만두려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그럴 리야.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