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도올은 “문장을 시작하면 글로 써달라고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을 쳐서 귀찮을 지경”이라고 했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되면 괴롭다. 머릿속은 할 말로 꽉 차 있는데 도무지 무슨 말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이번 호 커버스토리처럼 글 잘 쓰도록 도와주겠다는 책이 시중에 왜 수백 종이나 나와 있겠는가? 그러나 도올이 누군가? “나는 항상 글이 잘 써진다.”
평행봉 위에 날렵하게 올라 앉은 그의 모습은 강호의 호쾌한 무협고수를 연상시킨다. 환갑 가까운 나이에 평행봉 스윙이라니. 오래 전에 읽은 그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표지에 나온 도올과는 뭔가 차원이 달라보인다. 그 책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이조면 어떻고, 오얏(李)조면 어떻고, 살구조면 어떻고, 개조면 어떻고, 좆대가리조면 어떤가? 그까짓 이조, 이씨들이 다 해쳐먹고 망쳐먹은 이조라서 이조라 하면 어떤가?”(물론 이 글은 조선조를 폄훼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데서나 뽑아본 건데, 그야말로 도올답지 않은가!
이제 그 특유의 ‘잘난 척’과 ‘오버’, 그리고 ‘공격성’도 많이 없어졌단다. “내가 지금 내 책을 봐도 과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수용해준 사회에 감사해요.” 놀랍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하다. “사실 내가 그렇게 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를 까대고 뭉개려는 인간들에 대해 ‘너희들이 그래도, 도올은 사라질 수 없다’는 생명력을 보여주려는 과시이자 생명력의 표출이었어요. 이젠 정갈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올을 만든 것은 무능하고도 배타적인 ‘주류 기득층’에 대한 거부와 경멸, 야유, 그리고 오기와 자신감에 찬 투지, 바로 그 생명력이었다. 정갈한 책쓰기야 환영하지만, 세상을 뒤엎기도 전에 도올이기를 그만두려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그럴 리야.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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