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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른봄 매화에서 한겨울 동백까지 ‘꽃기행’

등록 2006-09-28 19:49

꽃에게 길을 묻다<br>
조용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1만2000원
꽃에게 길을 묻다
조용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1만2000원
잠깐독서

꽃을 좇아 반도의 남단에서 휴전선이 지척인 강원도 고성까지를 왕복하는 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벌을 치는 시인의 이야기였다. 조용호(45)씨의 직업이 벌치기는 아니지만, 그 역시 한시절을 꽃을 따라 다니며 보냈다. 소설가이자 신문기자인 그는 자신이 재직하는 <세계일보>에 꽃기행 산문을 격주로 연재했다. <꽃에게 길을 묻다>는 그 연재를 묶은 책이다. 매화와 산수유에서부터 복사꽃과 자운영을 거쳐 해당화, 구절초로 이어지다가 겨울꽃 동백으로 마감하는 꽃기행에는 꽃을 노래한 시인들의 작품이 가이드로 품을 팔았다.

꽃에게 무슨 길을 묻는가. 사람들은 꽃의 자태와 행태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상찬하거나 아쉬워하지만, 꽃은 인간사와 상관 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갈 따름이다. 가령 흔히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은 꽃과 잎이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안타까운 사랑의 대명사쯤으로 간주된다. 식물학자들의 견해는 단호하다. “암술과 수술이 그리워한다면 그럴듯하지만 잎과 꽃은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거기에서 자신들의 어긋나는 사랑, 그 운명의 장난을 본다. 피었다가는 지고 다시 피며 백 일을 간다는 배롱나무 꽃에서 사랑의 피고 지는 생리를 만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운명을 앞둔 어르신이 매화 향기를 맡고 싶어 하신다며 일찍 핀 매화 몇 송이를 비닐봉지에 따 담는 ‘매화도둑’의 효심은 매향에 못지않게 읽는 이의 코끝을 아리게 한다. 평생 거의 처음으로 아들과 함께 오붓이 꽃놀이에 나선 노모가 수줍게 하는 말 “야야, 신혼여행 온 것 같다 잉?”은 불효한 자식의 가슴을 아프게 때린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까다롭게 따지지 않”(도종환 <개나리꽃>)는 개나리꽃은 베풂의 너그러움을 가르쳐 준다. 한마디로, 꽃에서는 인간사의 전 면모를 다 만날 수 있다.

“잃어버린 옛날이야기가/모두 여기 와 꽃으로 피었을 줄이야.”(나태주 <자운영꽃> 전문)

아직 겨울의 한기가 남아 있는 이른봄 매화와 산수유를 필두로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수놓았던 꽃의 행진은 바야흐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지난 주말 고창 선운사에는 꽃무릇이 절정이었다. 지금쯤 공주 영평사에도 구절초가 한창일 것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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