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100살 내 인생은 ‘격동의 중국사’ 100년

등록 2006-10-12 20:40수정 2006-10-13 18:09

<b>가(家)</b><br>바진 지음. 박난영 옮김. 황소자리 펴냄. 전2권 각 9800원<br>
 <br>매의 노래</b><br>바진 지음. 홍석표·길정행·이경하 옮김. 황소자리 펴냄. 1만8700원
가(家)
바진 지음. 박난영 옮김. 황소자리 펴냄. 전2권 각 9800원

매의 노래
바진 지음. 홍석표·길정행·이경하 옮김. 황소자리 펴냄. 1만8700원
작가 바진 1주기 맞아 대표작 나란히 출간
낡은 봉건질서와 젊은이들의 충돌 그린 소설 ‘가’
문화혁명에 대한 회고 담은 수상록 ‘매의 노래’
중국 현대사 온몸으로 겪은 체험 오롯이
바진(巴金)은 1904년에 태어나 2005년에 숨을 거둔 중국 작가다. 청조 말기에 시작된 그의 생애는 신해혁명과 5·4운동을 거쳐 국·공 내전과 대일 항전, 일제 패망과 중국 공산당의 집권, 문화혁명과 마오쩌둥의 죽음, 그리고 개혁개방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 100년을 관통한다. 그 자신은 1932년에 내놓은 소설 <가(家)>를 통해 격동기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반봉건의 기치를 드높였으나 문혁 기간에는 반혁명분자로 몰려 고난의 10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문혁 이후에 복권되어 중국작가협회 주석 등 요직을 맡았다. 1979년 중국 작가대표단을 이끌고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통역으로 따라간 이가 바로 나중에 중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가오싱젠이다.

바진의 1주기(10월 17일)를 앞두고 그의 대표작 <가>와 수상록 <매의 노래>가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가>는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봉건적 폐습에 목을 졸린 채 신음하는 대지주 집안과 새로운 사상을 무기로 그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투쟁을 다루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가오’ 집안의 삼형제 쥬에신, 쥬에민, 쥬에후이다. 이들의 할아버지는 작은 왕국을 방불케 하는 집안을 철저한 봉건적 규율로써 다스린다. 삼형제 중 맏이이자 장손인 쥬에신은 근대교육의 혜택을 받은 인물이지만 장자로서의 책임감과 집안 어른에 대한 도리 때문에 할아버지의 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러나 쥬에민과 쥬에후이 두 동생은 형과 달리 기존의 질서에 순순히 복종하지 않고 반항한다.

작가는 젊은 형제들의 사랑과 결혼을 중심으로 봉건 질서와 신질서가 충돌하는 양상을 그려 나간다. 우유부단한 순종형 인물 쥬에신은 친척 누이인 메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그 사랑을 포기하고 할아버지가 정해 준 여자와 결혼한다. 낙담한 메이도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그 결혼은 오래지 않아 깨지고 메이는 친정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메이를 잊고 있던 쥬에신은 아내와 메이 사이에서 갈등한다.

‘집’은 낡은 세력의 근거지였다

중국작가 바진
중국작가 바진
형의 이런 모습에 대해 두 동생은 매우 비판적이다. 쥬에민은 그 역시 친척 누이인 친과 사랑하는 사이로, 자신의 운명이 형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 결국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서, 할아버지가 그에게 엉뚱한 혼처를 정해 주자 집을 나가는 행동으로 그에 저항한다. 막내인 쥬에후이는 셋 중 가장 과격한 인물. 학교 동무들과 함께 새로운 사상을 고취시키는 간행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할아버지의 압제와 큰형의 무능을 싸잡아 비판한다. 그는 또한 집안의 하녀인 밍펑과 사랑하는 사이로 결혼 약속까지 하는데, 할아버지가 밍펑을 다른 늙은이의 첩으로 보내기로 하자 밍펑은 자살을 택한다.

“자기 앞에 누워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다만 한 세대의 대표자에 불과하다.(…)이 두 세대의 간극은 영원히 메워질 수 없다”(1권 114쪽).


할아버지의 독선과 큰형의 무능력에 더해 삼촌들의 위선과 탐욕, 숙모들의 미신적 행태는 집안 분위기를 한층 암담하게 만든다. 주인공 쥬에후이에게 집이란 물리쳐야 할 적일 뿐이다.

“그의 눈에는 ‘집’이라는 것이 사막과 같았으며 낡은 세력의 근거지이자 적의 본거지였다.”(2권 177쪽)

그의 이런 판단이 지나친 것만도 아닌 것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상심한 메이가 시들시들 앓다가 죽고, 형수 역시 미신을 고집하는 숙모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채 아이를 낳다가는 숨을 거두고 만다.

“문혁 후유증, 생명 갉아먹고 있다”

“몇 마디 곡성과 몇 마디의 동정, 몇 방울의 눈물로 소중한 한 청춘을 매장하고 마는군요. 누님, 나는 누님을 그 죽음으로부터 불러내 누님이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에요.”(2권 208쪽)

“그는 이 집안에서 사랑을 짓밟는 어두운 힘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를 꿰뚫어보았다. 그는 또 소중한 젊은 생명들이 어떤 식으로 헛되이 희생되어 사라졌는지를 자기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2권 258쪽)

젊음과 늙음, 새로운 사상과 낡은 질서 사이의 대결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세상 없어도 나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들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2권 259쪽)라고 쥬에후이가 스스로에게 다짐할 때, 그는 할아버지와 삼촌 세대로 대표되는 낡은 봉건적 질서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다짐처럼 집을 나가 대도시 상하이로 향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반항아 쥬에후이의 관점을 주로 좇는 소설은 격렬한 분노의 어조로 시종한다. 낡은 세대의 가치와 행태를 일거에 부정하는 쥬에후이의 태도는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그와 작가 자신의 세대에게는 그것이 타당하고 유효한 태도였음에 틀림이 없다. <가>가 중국 젊은이들의 뜨거운 지지를 업고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그 점을 보여준다.

함께 나온 <매의 노래>는 바진이 문혁의 사슬에서 풀려난 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펴낸 다섯 권의 수필집에서 가려 뽑은 글들을 묶었다. 격동의 지난 세월에 대한 회고와 작가로서의 삶의 이모저모, 지식인으로서 중국 사회를 보는 태도 등을 두루 담았는데, 특히 자신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 문화혁명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 두드러진다.

“10년 ‘문혁’ 중에 나는 수성(獸性)의 대발작을 충분히 보았으며, 언제나 조반파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와 늑대’가 되는지 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피해를 입었으니 고발할 권리도 있고 탐구할 권리도 있다. 왜냐하면 문혁이 남겨놓은 후유증이 지금도 나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짐승이 뒤바뀌는 과정을 똑똑히 보았다.”(68쪽)

출판사 황소자리는 <가>와 함께 바진의 ‘격류 삼부작’으로 일컬어지는 <봄>과 <가을>, 그리고 선총원의 <변성> 등을 ‘중국 현대소설선’ 시리즈로 계속 펴낼 계획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소자리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