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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조선 우스개 지금 들으면 허무 개그”

등록 2006-10-26 21:36

선조들 포복절도한 조선 우스개 전혀 웃기지 않아 연구 시작
박사논문 이어 한국인 웃음 탐구 ”정월이란 제 이름 내력도 웃겨요”
인터뷰/‘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낸 류정월씨

“웃음, 그때 그때 달라요.”

류정월(33)씨는 댓바람부터 자신이 경직되고 ‘타이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달에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샘터)를 내자 가까운 동료들이 “평소에 농담도 이해 못하던 네가 무슨 웃기는 책이냐”며 놀렸다. 하지만 류씨의 ‘웃음 지론’은 좀 다른 데가 있었다. 자신처럼 웃음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역설적으로 더욱 웃음을 원한다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나고 거기서 사는 사람이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선 전기 성현의 문집인 <용재총화>를 공부하다가 당시에 사람들이 포복절도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은 정작 전혀 웃지 않았던 경험이 책을 쓰게 된 계기다. 웃음이 그때 그때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조선시대 우스개와 한국인의 유머’라는 부제처럼 지난날 선조들이 즐겼던 우스개 가운데 제도와 관습 등이 가려지고 잊혀져 제대로 그 의미를 읽어내고 통렬하게 웃어제치기가 어려운 것들을 추리고 현대적 의미까지 덧붙인 책이다. 때문에 “이 책은 ‘한국인의 웃음 백과사전’과 ‘한국인과 그 문화를 위한 백과사전’이 합쳐진 것”이라는 게 김열규 대구계명대 석좌교수의 추천사.

지은이가 자기 책에서 ‘강추’한 우스개 두 대목을 읽어보자.

이항복은 말(馬)을 끔찍이 아꼈다. 그가 사랑채에 있는데, 안채에 있는 계집종이 나와서 말했다. “말에게 먹일 콩이 떨어졌사옵니다.” 이항복이 웃으며 말했다. “말을 먹이는 것도 대신과 의논을 해야 하느냐?”(40쪽)

일상적인 상황에서 툭 우스개 소리를 던지되 선비다운 단아함을 잃지 않은 유머다. 이항복의 말에 웃지 않은 독자들은 자신이 향신료 강한 음식처럼 자극 강한 유머에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요즘의 우스개 하나 더.

사악한 두 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엄청난 부자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고 마약과 여색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독실한 신자처럼 보이기 위해 교회에는 누구보다도 헌금을 많이 했다. 목사는 항상 양심에 걸렸지만 교회의 재정을 생각해서 두 형제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사고로 죽었다. 동생은 장례식의 진행을 맡은 목사에게 다가가 거만하게 말했다. “우리 형이 성자였다고 말하시오.” 목사는 계속 고민했고,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목사가 입을 열었다. “고인은 마약과 여색에 빠져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으며 평생토록 돈을 나쁜 곳에만 사용했습니다.” 동생이 깜짝 놀라 쳐다보자 목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동생에 비하면 그는 성자였습니다.”(275~276쪽)

류씨가 거듭 힘주어 말한 것은 웃음이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웃음>을 쓴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도 그렇거니와 지금까지의 웃음 연구가 대부분 웃음의 주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특히 1년여 동안 책을 준비하면서 숱한 기록을 들춰보니 류씨는 조선시대 사람들과 우리가 ‘컨텍스트(맥락)’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때문에 풍자나 해학이라는 단어로 조선시대 우스개를 간단히 말하는 것은 ‘너무나 허무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류씨는 서강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2003년 <문헌 소화의 구성과 의미 작용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화(우스개)를 주제로 논문을 썼으니 이번에 낸 책은 일반대중을 위한 ‘자매편’인 셈이다.

끝으로, 류씨가 기자에게 즉석에서 들려준 우스개 하나. 류씨의 이름은 1월을 달리 부르는 정월(正月)이다. 이렇게 짓게 된 내력. 류씨가 태어나자 그의 부모가 작명소를 찾아 혜선(惠善)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단다. 당시 류씨 가족에 더부살이를 하던 ‘빈둥대는 삼촌’이 있었는데, 그가 문제의 인물. “1월에 태어났으니 그냥 정월로 짓지 뭐.” 아버지 호적지인 부여에 가서 이름을 올려야 했는데 하필 ‘문제의 그 삼촌’이 그곳을 갔다고 한다. 부여에 도착한 그, ‘혜선’의 한자도 기억 안 나고 해서 그냥 (자신이 지은) ‘정월’로 호적에 올렸단다.

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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