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바다로 가다
김명인 지음. 문학동네 펴냄. 9000원
김명인 지음. 문학동네 펴냄. 9000원
<동두천> <바닷가의 장례> 등의 시인 김명인(고려대 문창과 교수)씨가 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그의 거의 모든 시집을 냈던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선집 <따뜻한 적막>이 나왔으며, 시인의 첫 산문집인 <소금바다로 가다>도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시만 써 온 그로서는 첫 ‘외도’라 할 법하다.
외도라고는 해도, 산문들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라잡이 구실을 한다.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총살당한 큰숙부와 고모부, “눈만 뜨면 마주하는 동구 앞의 바다. 등뒤로는 태백산맥의 거대한 산줄기가 수직의 경사를 이루면서 가로막고 있어서, 파도가 길게 할퀴고 가는 협소한 해안분지조차 마치 단애에 걸쳐놓은 선반처럼 위태롭게 느껴지는”(73쪽) 고향의 척박한 여건,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만난 <소월시집>을 통해 문학에 눈을 뜬 소년기…. 이 모든 경험과 환경이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얼결에 <소월시집>을 독파했을 때의 느낌을 적은 부분이다. 아직 언어로 형상화되기 전, 무정형의 자질로서 꿈틀거리고 있는 ‘시적인 것’의 정체를 보여준다.
“그 정서는 우수의 본향과도 같은 막연한 갈증, 무어라 가닥이 잡히지 않아 어슴푸레한 윤곽으로만 그려놓은 영혼의 지형도처럼 보였다. 형체만 있고 세부가 채워지지 않은 박명의 어스름, 곧 동해에 연한 태백산맥의 발치에 파묻힌 한갓진 어촌에 불과한 내 고향 땅에서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땅거미 같이 신산스러운 기갈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분위기였었다.”(72쪽)
그렇다고 해서 시가 그에게로 곧장 왔던 것은 아니다. 목표했던 의대 진학에 실패한 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택한 국문학과에 입학해서도 그는 시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그에게 대학 2학년 때 수강한 조지훈 선생의 ‘시론’ 강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선생의 지시에 따라 습작을 하다가 마침내 등단을 했고, 역시 곡절이 없지 않은 대로, 지금과 같은 시인이 되었다. 그런 그에게 시쓰기란 길 찾기였노라고 시인은 말한다.
“내 시는 결국 실존의 지평을 확인하기 위해 마음의 목측(目測)으로 등고선을 긋고 삶의 변경들을 잇대놓은 신산스러운 자기 확인의 지형도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그 지도는 계속 그려졌지만, 아직도 완성된 부분이 없다.”(76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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