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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문사학자가 여태 방치하기에…”

등록 2006-11-09 20:51

조선상고사<br>
신채호 지음.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펴냄. 2만2000원
조선상고사
신채호 지음.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펴냄. 2만2000원
“30년 독서경력 이 일 위한 것” 중국 경·사 섭렵에 갑골문자 익혀
청소년도 읽을 만큼 쉽게 풀어 “식민사관·동북공정 엎을 필독서”
인터뷰/신채호의 <조선 상고사> 쉬운 말로 옮긴 박기봉씨

“그는 영문을 독학하여 기본의 로마사까지 자유자재로 송독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neighbour(이웃, 근린)’란 단어를 반드시 ‘네이그흐바우어’라고 발음하였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진언하였다. ‘그 중에 사음(묵음)이 있으니, 네어버- 라고만 발음하시오.’ 그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나도 그거야 모르겠소? 그러나 그건 영국인들의 법이겠지요. 내가 그것을 꼭 지킬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이오.’”(변영만)

“중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중화보>의 사설을 쓰고 생계를 해 나가던 때였건만 오자 한 자를 내었다고 하여 그 날로 단연 집필을 거절하였다. 그 오자란 것도 문장의 뜻을 해치는 오자가 아니라 ‘의(矣)’ 한 자였건마는, 그것이 조선 사람에 대한 우월감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하여 몇 번이나 마차를 타고 사죄하러 온 중화보 사장을 질책하고도 영영 집필하지 않았다.”(신석우)

“단재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팔짱을 끼고 책사(서점)를 더듬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에 관한 말이 있으면 책을 살 돈은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보았다. 오늘에 다 못 보면 이튿날 또 가서 보았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시장해지면 집으로 돌아왔다.”(이광수)

“책을 읽을 때에는 책장을 헤아리는 것처럼 빨리 읽었다. …그러나 끝 장까지 넘기고 책을 덮고 나면 그 책의 내용을 숙독한 사람처럼 이야기하였다. 참으로 천재였다.”(이극로)

비봉출판사에서 낸 <조선 상고사> 부록에 실려 있는 지인들의 단재 회상기다. 이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옮긴이 박기봉(59)씨는 “지난 30년간의 독서경력은 어찌 보면 이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 일’이란 한자 투성이에 토씨 정도만 한글로 된 책의 원문을 “고교생 정도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알기 쉬운 현대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원래 경제사학을 공부했던 그는 독학으로 숱한 중국 경·사 전적들을 섭렵하고 중국어도 배웠으며, 갑골문자에 이르는 고문까지 익혔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유명한, 일제 식민사관을 한 방에 날려버린 <조선상고사>, 사학자로서의 단재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기왕에도 한글로 정리돼 나온 게 없진 않았다. 그러나 주해서에 머물거나 한자 투성이의 어려운 고투를 벗어나지 못했고, 어떤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누가 어떻게 펴낸 것인지 기본적인 서지사항도 밝히지 않은 정체불명의 것도 있다.


박 대표가 자신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 “사실상 처음으로, 쉽고 충실하게 원문의 뜻을 제대로 살려 우리말로 옮겼다”는 것이고, 48년 첫 단행본 발간 때의 민세 안재홍 서문과 명사들의 단재 회상기, 연보 등을 넣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1편 총론 중의 <고려사> ‘신지’ 관련 김위제전 인용부분의 경우 기왕의 책들은 한자 원문만 인용돼 있으나 비봉사판은 원문의 한글식 읽기와 자세한 내용해설을 넣었다. 그는 이런 작업의 기회가 자신에게 온 것이 “다시없는 영광”이라면서도 도대체 그 수많은 전문 사학자들은 어디 가고 자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인지, 그 자신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위대한 항일독립운동가, 혁명가, 불세출의 역사학자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단재가 30대였던 1910년대에 구상하고 집필하기 시작한 <조선상고사>는 그가 일제 감옥에 투옥당한 뒤인 1931년 103회에 걸쳐 안재홍이 운용하던 <조선일보>에 ‘조선사’란 이름으로 연재됐다. “망령된 생각이지만 <조선 사색당쟁사>와 <육가야사>만은 조선에서 내가 아니면 능히 정곡한 저작을 할 사람이 없으리라”고 자신했던 그는 이들 책은 물론 조선상고사도 백제 멸망 뒤 부흥운동 이후는 손을 대지 못하고 떠났다.

박 대표는 이는 “단재 저술만 미완으로 끝난 게 아니라 우리민족 고대사 자체가 불구로 남게 된, 우리민족에겐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면서도 <조선상고사>가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을 뒤엎을 모본이자, “국민 필독서”라고 했다. 다음달 쯤 후속편으로, <독사신론>과 <조선사연구초>, 그리고 사론들이 함께 들어가는 <조선상고문화사>를 낼 예정이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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