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작가협회 주석 뽑힌 톄닝
중국작가협회 주석 뽑힌 톄닝
40일간 서울체험 펴내기도
40일간 서울체험 펴내기도
“2003년 5월 화가인 아버지의 작품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당시 중국에선 ‘사스’(중증급성호흡기장애)가 창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에 폐를 끼칠까봐 전시회를 취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쪽에선 전시회를 그대로 열겠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정이 많고,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12일 중국 작가협회 주석으로 뽑힌 톄닝(49)은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전시회를 강행한 것은 참 용기있는 결정이었다”며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코 끝이 찡하다”고 말했다. 당시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찾았던 그는 40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톄닝일기-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펴내기도 했다.
중국 작가협회 주석은 중국의 당대 문학과 작가들을 대표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마오둔과 바진 단 두 사람만이 이 자리에 앉았다. 여성이, 그것도 40대 작가가 주석이 된 것은 57년 작가협회 사상 처음이다.
-작가협회 주석에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
=기쁘고도 황송하다. 동료의 신임과 인정이 영광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게으름 피우지않고 정진하겠다.
-중국 문학사에서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나는 문화대혁명 이후 작가 대열에 든다. 이른바 ‘신시기 작가’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착실하게 세상을 보고, 성실하게 글을 쓸 뿐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진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부른다. 작가협회 주석이란 자리가 그런 글쓰기를 방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본은 여전히 작가다. 작가가 아니었으면, 작가협회 주석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협회 주석이 된 뒤로 글쓰는 시간이 줄어들어 안타깝다. 1957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 때 허베이성 농촌으로 하방당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75년 첫 작품 〈날아다니는 낫〉을 발표한 그는 84년 소녀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그린 중편소설 〈단추 없는 붉은 티셔츠〉가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98년 내놓은 첫 장편소설 〈장미의 문〉은 여러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투쟁사를 솜씨 있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에게 한국은 애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그런 어두운 인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톄닝일기〉는 온돌, 막걸리, 상추쌈, 쓰레기 분리수거 등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들의 생활에 대한 이방인의 애정어린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최근 중국과 조선의 근대사를 풍미했던 군벌 위안스카이의 막료로 일했던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탈고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대욕녀〉가 곧 한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근본은 여전히 작가다. 작가가 아니었으면, 작가협회 주석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협회 주석이 된 뒤로 글쓰는 시간이 줄어들어 안타깝다. 1957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 때 허베이성 농촌으로 하방당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75년 첫 작품 〈날아다니는 낫〉을 발표한 그는 84년 소녀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그린 중편소설 〈단추 없는 붉은 티셔츠〉가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98년 내놓은 첫 장편소설 〈장미의 문〉은 여러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투쟁사를 솜씨 있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에게 한국은 애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그런 어두운 인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톄닝일기〉는 온돌, 막걸리, 상추쌈, 쓰레기 분리수거 등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들의 생활에 대한 이방인의 애정어린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최근 중국과 조선의 근대사를 풍미했던 군벌 위안스카이의 막료로 일했던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탈고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대욕녀〉가 곧 한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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